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은 비판적이며 강경하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다.
북한을 ‘가장 광범위한 감옥 체제’라고 규정한 미 국무부 스콧 카펜터 인권 담당 차관보는 최근 “문제가 너무 근본적인 것들이어서 미국 홀로 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인권 문제를 강하게 비판하고 북한 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표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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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국가로 외교관계도 없는 데다 핵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걸려 있고,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하는 바람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무부가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주의를 환기하고 ‘종교탄압 특별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해 놓은 정도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에 비해 미 의회와 민간 단체들의 북한 인권 및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상당히 적극적이며 활발한 편이다.
의회는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했고, 지난해에는 중국에 탈북자 북한 강제 송환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의회는 특히 탈북자 문제를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다루고 있다.
상원 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존 카일 의원 등 4명은 1월 외교위원회에 북한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원 중단, 탈북자 지원 및 미국 망명 허용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을 제출해 놓았다. 이 법안은 탈북자들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도록 미국 이민 및 국적법에 규정함으로써 미국으로의 망명 신청이 가능한 난민 지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상원은 1월 31일 탈북자 지원 예산 1000만달러가 포함된 법안도 통과시켰다.
의회가 이처럼 탈북자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디펜스포럼과 탈북자 인권보호협의회 등 인권단체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미 언론 보도에 영향을 받은 것일 뿐만 아니라 인도주의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인권단체 관계자는 말했다.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미 정부는 현행법상 미국 영토에 직접 들어와 망명을 신청하지 않는 한 망명 자격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 이민법원은 지난해 8월과 9월 탈북자 김순희씨(38·여) 등 3명에게 망명을 허용한 적이 있어 정부 방침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지만 해당 판사의 독자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편 민간단체들은 중국 정부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고 법적인 대우를 해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북자 북송과 관련,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 개최지 변경과 중국산 상품 불매운동도 거론하고 있다.
북한인권위원회 프레드 이클레이 위원장은 한국이나 일본 기업이 북한에서 생산하는 상품은 일종의 ‘노예 노동’에 의한 상품으로 간주해 미국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의회 내에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민간단체들은 미 정부에 몽골이나 중국에 탈북자수용소가 설립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숄티 美 디펜스포럼재단 회장…"DJ정부 北인권 침묵에 실망"▼
수잔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재단 회장(사진)은 96년부터 북한 인권 문제와 탈북자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탈북자 초청 및 의회 증언, 각종 강연 및 포럼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와의 일문일답 요지.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상황은 어떤가.
“북한의 인권은 오늘날 세계에서 최악이지만 가장 안 알려져 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나치나 구소련의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끔찍하다. 김정일은 정치범 수용소에서 매일 수백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굶주리는 북한 사람에게 보낸 인도적 구호품을 빼돌리고 있다. 그는 식량을 자신의 국민에 대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그들을 걱정하고 돕기 위해 인도적 구호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구호 식량이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도록 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식량 지원은 북한 주민을 직접 돕고 있는 단체들을 통해 전달돼야 한다.”
―탈북자들에게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베트남 보트 피플은 아무 것도 없이 미국에 왔다. 대부분 영어도 몰랐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 지 1년 이내에 90% 이상이 자립했다. 탈북자들에게 망명을 허용하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미국은 박해와 독재와 가난에서 탈출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찾아온 이민자들의 나라다.”
―탈북자들을 위한 난민촌 건립을 요구해왔는데….
“중국과 북한이 무력한 난민들에게 가하는 고통과 비극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정착할 때까지 보호해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줘야 한다. 탈북자들을 위한 피난처가 확보되면 돕겠다는 단체들이 전 세계에서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인권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에 대해 말하지 않은 데 대해 실망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은 무시했다. 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