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고 있는 SK㈜를 통째로 삼키려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 외국계 펀드가 3월 말부터 SK㈜ 주식을 시장에서 집중적으로 사들여 단일주주로는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이후 대주주인 SK㈜의 주가가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투자목적으로 매입했을 수도 있지만 SK㈜만 인수하면 SK그룹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SK그룹 최태원(崔泰源) 회장이 법정구속된 원인이었던 워커힐호텔-SK C&C와의 주식맞교환도 이러한 적대적 M&A를 예방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주식매집, 왜 하는가〓최 회장의 주식맞교환이 원상회복되면서 최대주주는 SK C&C(8.49%)가 됐다.
그러나 조세피난처인 카리브해 버진아일랜드 소재 투자펀드인 ‘크레스트증권’이 3월26일∼4월2일 시장에서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8.64%(인수대금 970억원)를 확보해 1대주주가 됐다.
배경을 놓고 시장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첫째는 적대적 M&A다. SK㈜ 주가가 폭락했을 때 싼값에 사들이면 자회사인 SK텔레콤 등 그룹계열사를 대부분 장악할 수 있다(그림 참조). 이후 다른 외국계 투자펀드의 우호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된 다음 외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부실계열사를 정리, 정유사업에만 전념하면 주가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또 SK텔레콤의 최대주주로 제3자에게 경영권을 넘기면 아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 데다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SK㈜의 주가가 낮았던 것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맡으며 불필요한 지출이 많았고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이 낮았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두 번째는 크레스트증권이 공시한 대로 단순 투자 목적이다.
SK글로벌 사태의 영향으로 주가가 폭락했지만 회사의 사업성과 자산가치를 따져볼 때 주가가 너무 낮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작년 말 SK㈜의 장부상 주당가치는 4만1000만원이었지만 4일 종가는 9250원에 불과하다. 증권가에서는 SK글로벌 관련 부실을 감안해도 적정주가를 3만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SK, 경영권방어 가능한가〓SK㈜에 대한 계열사와 오너의 지분(13.26%) 및 자사주(10.24%)를 합한 우호지분을 합치면 23.5%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영권방어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 회장이 보유한 SK C&C 지분은 채권단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SK㈜의 우호지분으로 보기 어렵다. 또 자사주는 의결권이 제한돼 있어 정작 표 대결이 벌어지면 별 도움이 안 된다. 다만 SK㈜가 자사주를 SK그룹 계열사에 팔아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있으나 이는 SK그룹 내 강력한 구심점이 있어야 가능하다.
증권업계는 M&A가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누리투자증권 조삼용 애널리스트는 “SK㈜가 현재 보유 중인 현금 2조6000억원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방어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있다”며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노조 설득 등 여러 개의 장벽을 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