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7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보고한 ‘주요 현안 및 정책과제’는 시민단체와 일부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온 ‘재벌개혁’ 방안을 대부분 담고 있다.
반면 지주회사 설립요건의 대폭 완화 등 대기업들의 요구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계는 “시대착오적이고 반(反)시장적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일부 정책은 이날 배석한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가 정책일관성을 들어 반대의견을 밝혔고 과거 논란이 됐을 때도 재정경제부와 법무부 등 정부 부처들이 강하게 제동을 걸었던 사안이어서 추진과정에서 많은 진통이 예상된다.
▽공정위 ‘재벌정책’의 내용과 배경〓공정위가 이날 발표한 대기업집단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정부가 기업투자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 풀어줬던 규제를 다시 죄는 유형이다. 출자총액제한의 예외를 축소하고 금융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허용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금융회사 계열분리청구제와 대기업집단 총수 및 친인척 지분 공개 등 새로운 규제의 도입이다. 대기업집단만을 겨냥한 정책은 아니지만 ‘공익 소송제’의 도입과 공정위 직원에 대한 사법경찰권 부여 등도 새로운 압박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익 소송제란 국가기관이 담합(카르텔)이나 허위광고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을 대신해 소송을 한 뒤 배상금을 나눠주는 제도.
공정위가 이처럼 이른바 ‘재벌’을 전방위(全方位)에서 압박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대기업집단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4일 열렸던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4대 그룹 구조조정본부 본부장들은 “그동안의 기업개혁으로 경영시스템과 관행이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며 인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7일 보고에서 “일부 성과가 있지만 시장이 신뢰하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면서 “총수 중심의 불투명한 경영과 지배권 세습, 불공정 경쟁이 상존하고 있다”고 재계 주장을 일축했다.
▽재계의 반발〓대기업 지배구조와 경영관행에 문제가 있더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는 방식보다는 시장을 통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 풀어야 한다고 재계는 강조한다.
특히 정부가 2002년 1월 출자총액제한에 예외를 인정하고 금융회사의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허용했다가 1년여 만에 이를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중복규제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과 외국기업과의 역(逆)차별 등에 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형만(李炯晩)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공정위가 이날 밝힌 대기업정책은 1970∼80년대의 폐쇄경제체제에서나 적용될 수 있다”면서 “출자총액과 의결권 제한을 통해 국내 대기업의 손발을 묶으면 매물로 나온 국내 기업이 모두 외국 기업에 넘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부채비율 52%(2002년 기준)에 불과한 포스코는 인수경쟁에 나서는 데 제약을 받고 부채비율 245%(2001년도 기준)인 신일본제철은 아무 제약 없이 한국 기업을 사들일 수 있다는 것.
신종익(申鍾益)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이미 금융계열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일정비율 이상 갖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다”면서 “그런데도 의결권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명백한 이중규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출자총액을 제한하는 기본취지는 남의 돈으로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부채비율 100% 미만인 대기업집단은 이런 우려가 거의 없기 때문에 출자총액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주요 정책과제 현황현안공정위 추진방향재계 입장출자총액제한
예외 축소-재무 건전성과 소유구조의 문제는 별개이므로 재무구조 우량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예외 인정은 문제, 개선 추진-특정 기업집단을 겨냥한 제도 변경은 부당
-부채를 통한 계열사 확장 방지도 출자총액규제의 목적이므로 재무구조 우량기업에 대한 출자규제 예외는 타당부당내부거래
기획 조사-전쟁 등 급박한 경우에만 조사 시기와 대상 조절-경제위기를 감안해 올해 실시될 전면 조사 연기지주회사제도
보완-부채비율과 자회사 지분 등 큰 틀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유예기간 확대와 세제지원-외국회사와 합작 등 조건에 따라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규제 완화금융회사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의결권 허용 범위를 재검토
-민관 합동 기획팀에서 논의-금융계열사의 타 회사 지분 보유도 제한돼 있어 이중 규제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 위해 도입 검토-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
-외국기업 등에 적대적으로 인수합병당할 우려공익소송제 등 소비자 보호 강화 -사적 공적 소송 활성화로 소비자 보호 강화-소송 남발 우려
-법원의 판단 이전에 소송 과정에서 기업 충격자료:공정거래위원회. 재계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