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3차 동시분양에 참가한 건설회사들이 분양가를 소폭 내렸다. 3억원에 육박하는 아파트 값에서 최고 700만원 깎은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압력 때문이었다.
모 건설회사 분양 담당자에게 물었다.
“그 정도면 사업수지가 크게 나빠지나요?”
“원칙대로라면 사업성이 떨어지지만 분양가에 미리 반영해 두기 때문에 거의 영향이 없어요. 어차피 분양가를 내리라고 압력을 가할텐데 미리 가격을 올려 신고했다가 나중에 내리면 성의표시도 할 수 있고 사업성도 유지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지요.”
그는 다른 건설회사도 대부분 이런 식으로 분양가를 조정한다고 설명했다. 운이 좋으면 당초 예상했던 수준보다 낮은 선에서 분양가를 내릴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서류를 본 것도 아니니 이를 모두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직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최근 시민단체와 건설회사간의 분양가 공방은 ‘코미디’로 전락한다.
시민단체들은 분양가를 내리라고 요구하지만 건설회사들은 미리 깎을 것을 생각해 값을 높게 매긴다. 시민단체들은 최초 분양가를 보곤 발끈했다가도 건설회사들이 가격을 내린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그새 분양가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금슬금 올라간다.
건설회사들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가격에 대해 간섭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시민단체들이 분양가 인하의 근거로 내세우는 자료가 업계의 현실과는 턱없이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한국의 주택시장에서 ‘시장가격’ 운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꼬집는다. 지역에 따라 주택공급의 편차가 큰 상황에서 소비자는 공급자가 일방적으로 책정하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건설회사가 이런 식으로 분양가를 조절하는 건 곤란하다. 시민단체도 막무가내식으로 가격인하를 강요하기보다는 좀 더 치밀한 논리와 정교한 방법론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미디를 보는 관객만 우울해질 뿐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