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아랍계 구호단체 적신월사(Red Crscent Society)와 함께 바스라 남서쪽 20여킬로미터 떨어진 아즈 주바이르 도시를 방문했다. 적신월사는 트럭 7대에 실은 1.5리터 생수 10만병을 아즈 주바이르 시내 곳곳에서 이곳 주민들에게 나눠줄 계획이었다.
시내 외곽으로 진입하자 황무지 사이로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층 짜리 흙집이었다. 어느새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타나 먹을 것을 달라고 손짓했다. 아이들은 맨 발로 차를 쫓아오며 온몸으로 호소했다.
밖은 찜통이었다. 후끈한 열기에 바람까지 불어오니 숨이 콱콱 막혔다.
차를 쫓아온 모하마드 알리(12)는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을 향해 "노 푸드, 노 워터(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다)"라고 외쳤다. 서방 기자 한 명이 통역을 통해 "후세인이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알리는 조금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이제는 안 무섭다"고 말했다.
아즈 주바이르 시내 쪽으로 들어갔다. 아즈 주바이르는 근교 마을까지 합쳐 인구 30만명의 작지 않은 도시다. 그러나 거리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이 닫혔고, 곳곳에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한 공터에는 토마토를 채운 차량 10여대가 사람들에게 토마토를 팔고 있었다. 토마토 도매시장인 것 같았다.
공터를 지나 다리를 지나자 차량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안에 나무들이 꽤 울창한 공동 묘지가 나타났다. 시내 안에서 일종의 공원 역할을 하는 곳 같았다. 공동 묘지가 끝나자 이번에는 '탱크들의 묘지'가 나왔다. 벌겋게 녹슨 탱크 수십여 대가 부서진 채 황무지 속에 처박혀 있었다. 상태로 미뤄 최근에 부서진 것들은 아닌 것 같았다.
트럭 한 대와 기자를 태운 버스는 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즈 주바이르 종합 병원. 주민들에게 물을 나눠줄 장소 중 한 곳이다.
후세인 야시르 병원장(56)은 "이 병원에는 의사 40명에 152개의 병상이 있다"고 소개했다. 야시르 병원장 사무실 벽에는 사담 후세인의 젊을 때 모습으로 보이는 흑백 사진이 액자에 넣은 채 걸려 있었다.
야시르 병원장은 "전쟁이 시작된 뒤 지난달 26일까지 일주일 가량 이 도시에서도 연합군과 이라크 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야시르 병원장 사무실 벽에도 폭격으로 큰 구멍이 나 있었다.
그는 "전쟁으로 270명의 민간인이 다쳐서 우리 병원에 입원했고, 이 중 60여명이 죽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3분의1은 아이들이라고 덧붙였다.
몇 군데 병실을 둘러보니 외상 환자가 그리 눈에 띄지는 않았다. 한 병실에 팔에 붕대를 감고 침대 누워있는 아이가 있었다. 어웨이트 달랄(8)이라는 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자를 쳐다보았다. 옆에는 검은색 히잡(전통복장)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두른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동행한 간호사는 "미군의 총에 맞았다"고 귀뜸했다. 또 다른 병실에 폭격으로 집이 무너져 다리를 다쳤다는 한 소년과 여성이 누워있었다.
병원 건물 밖 마당에서 베레모를 쓴 영국군이 적신월사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실린 물을 마을 주민에게 나눠줬다. 병원 입구의 철제 문 밖에는 소식을 듣고 이미 주민들이 새까맣게 몰려있었다. 군인들이 통제를 위해 문을 조금만 열어 몇 사람씩 안으로 들여보내자 서로 먼저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문을 밀치며 군인들과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군중들의 힘에 밀려 몇 차례 문이 활짝 열리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영군군 몇 명이 지프차로 문을 막고 기관총을 사람들에 겨눴다. 한 명은 허공에 총을 연달아 쏘며 군중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사람들은 총소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이라크인은 오히려 망치를 손에 들고 영국군인에게 휘두를 기세였다. 또 다른 군인들은 담장을 넘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이라크 인들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듀크웰링턴 연대 톰 벨링스 소령은 "치안이 최우선이며, 그 다음으로 전력과 물 공급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 부대 100여이 이 도시 20만 명에 대한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역부족"이라고 시인했다.
실제로 치안 문제는 이 남부 도시에서 점차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후세인이 전쟁에서 곧 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들려오고 있는데다 집권 바트당 당원들도 거의 사라지면서 권력 공백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이 곳 뿐만 아니라 위쪽 바스라도 거의 무법천지 상태가 됐다고 외신 기자들이 전하고 있다. 수천명의 시민이 대학과 은행, 공공건물 등에 난입해 테이블과 책상, 에어콘, 그림, 책 등을 나귀와 차량에 마구 실어 나르고 있다는 것. 야시르 병원장도 "이 병원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치안 부재"라며 "물과 전기 그리고 의약품 부족은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부터 강도와 도둑들이 부쩍 많아져 병원의 탁자나 의자 등의 물건 등을 도둑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수를 다 나눠주고 쿠웨이트로 돌아가기 위해 병원 밖으로 나섰다. 저녁이 되면서 폭염이 수그러들어 그런지 거리가 낮보다는 활기가 있었다. 낡긴 했지만 길에는 버스도 다녔고, 승용차도 상당히 많아 교통체증이 있는 곳도 있었다. 주유소에서는 사람들이 차에 기름을 넣고 있었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눴고, 문을 연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길거리에 탁자를 놓고 구두 수선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전거를 탄 아이와, 골목에는 축구공을 차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부서진 건물들을 빼면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리의 활기도 잠시 뿐이었다. 오후 6시 반이 지나면서 땅거미가 내리더니 이내 어둠이 아즈 주바이르를 삼켜버렸다.
쿠웨이트=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