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의 구내식당에서 쓰는 참기름은 ‘제일식품’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특이한 건 제일식품이 주로 군(軍)에 납품하는 업체라는 점. 감사원 식당이 군납회사 제품을 쓰게 된 건 제일식품을 운영하는 군인공제회에 대한 감사가 계기가 됐다. 공제회의 뛰어난 경영실적을 들여다본 감사원 직원들은 “연기금 중에서 이렇게 건실하게 운영되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평가했다. 그게 인연이 돼 감사원 식당 납품이라는 덤까지 얻은 것이다.》
공제회는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안정과 복지사업을 위해 1984년 발족한 법인. 일반인에게는 알려질 이유가 별로 없지만 최근 눈에 띄는 투자 행보로 시선을 끌고 있다. 증권가의 ‘보이지 않는 큰 손’ 정도에 머물렀던 공제회는 지난 몇 년간 부동산 업계의 새 강자로 떠올랐다. 최근엔 ‘금호타이어 인수’라는 깜짝 뉴스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19년 연속 흑자를 내온 성적표다. 공제회가 회원을 대상으로 개설한 저축예금의 현재 이자율은 연 8%대. 시중은행의 5%보다 3%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창립 이후 시중은행보다 항상 3∼5%포인트 높은 이자율을 지급한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그 같은 고리(高利)의 혜택을 줄 수 있었던 바탕은 공제회의 높은 수익률이다.
‘군(軍)과 재테크.’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깨고 수익성에 관한 한 연기금 운영에 하나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군인공제회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는 일류기업”=김승광 공제회 이사장은 지난달 취임하면서 “이익 창출을 극대화해 명실공히 손색없는 일류기업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처럼 들리는 이 얘기에서 공제회의 경영수칙 제1조가 뭔지 잘 드러난다.
공제회의 변화노력은 일류기업의 변화경영과 다를 게 없다. 공제회는 과거엔 안정적인 군납만으로 수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납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제회는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눈을 돌렸다.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2, 3년간은 금융상품 투자에 주력했다. 그러나 저금리 시대를 맞아 수익률이 떨어지자 이번엔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서울시내 주상복합아파트 시장에 집중 투자한 것이 적중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슈퍼빌’을 시작으로 주상복합아파트 사업에 나서 많은 부동산 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일반인의 귀에도 익은 ‘경희궁의 아침’ ‘여의도 리첸시아’ 등이 공제회의 작품. 부동산신탁업 진출을 위해 대한토지신탁까지 인수했다. 공제회가 부동산 사업에서 성공하자 다른 연기금들도 부동산 시장에 속속 뛰어들었다. 경남리스와 한국캐피털을 인수해 금융 부문도 갖췄다.
▽안정성과 과감성=공제회가 주목받는 건 무엇보다 막강한 자금 동원력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보유자산은 3조4600억원. 동원 가능한 현금만 1조원이 넘는다. 이 돈이 움직이면 그 자체가 무시 못할 위력을 갖는다.
따져보면 공제회 이상으로 자금 능력을 갖고 있는 연기금은 많다. 하지만 공제회의 성공투자는 자금능력에다 몇 가지 ‘+α’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먼저 철저히 수익성을 따지고 드는 안정 위주의 투자다. 공제회 한대희 사업본부장은 “험한 군대생활을 한 군인 출신들이지만 리스크가 큰 투자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업이 많은 만큼 자체적인 건설사를 보유할 만도 하지만 시공은 모두 아웃소싱하는 것도 안정성을 위한 것. 건설회사는 돈을 벌 때는 크게 벌지만 경기가 어려우면 공제회 수익성에 큰 짐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과감하다. 연기금 중에서 벤처투자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공제회가 처음이다.
제주도에 ‘샤인빌 럭셔리 리조트’ 건설을 할 때는 공사비를 사전에 빌려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으로 참여했다.
금호타이어 인수도 마찬가지다. 생소한 사업 분야지만 수익성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과감히 인수를 결정했다.
공제회가 가진 또 하나의 강점은 대기업 못지않은 맨파워다. 공병 병참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원들은 과거 군에 엘리트들이 몰리던 시절 입대한 이들이다.
해외 유학경험 등이 풍부한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지식에다 사회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군 출신 네트워크를 결합해 뛰어난 사업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