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 대해 이라크로부터 받아야 할 채권을 포기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또 이들 반전 3국이 기왕에 이라크와 맺은 유전개발권도 미국측이 파기할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이라크전쟁 이후의 ‘경제 전쟁’에 각국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건설의 11억400만달러 등 6개 업체가 12억6000만달러에 이르는 채권을 갖고 있다. 미국의 대(對)이라크 채권 처리 방향에 따라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어떤 나라, 어떤 채권이 포기 대상인가=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전 세계 각국이 이라크에 갖고 있는 채권은 91년 걸프전 배상금 1999억달러를 포함한 3844억달러. 이 정도의 부채라면 이라크는 파산상태나 다름없다.
폴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10일 채권 포기를 촉구하면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무기를 사고 △궁전을 짓고 △탄압의 수단을 강화하기 위해 빌린 채무에 대해 새 정부의 빚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울포위츠 부장관은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등 ‘3개 국가’를 지목했다. 이들 3개국의 채권은 약 740억달러에 이른다.
따라서 미국이 앞으로 포기 촉구 대상에 파병을 결정하는 등 전쟁에서 우방에 선 국가의 채권까지 포함할 것인지, 채권의 내용도 무기 구입과 후세인 독재정권 유지에 직접 관계된 것에만 한정될 것인지에 따라 각국의 이해가 엇갈릴 전망이다. 또 독일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요르단 등의 채권은 전쟁 배상금이어서 포기 대상에 포함될지도 관심이다.
▽‘속셈 드러난 석유전쟁’=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프랑스 러시아 등과 했던 유전 개발 계약도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할 것을 촉구하고 나서 이번 전쟁이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일부의 비판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은 또 앞으로 전쟁 피해 복구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이뤄질 석유 개발도 철저히 미국과 영국의 이해에 따라 좌우될 것임을 시사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이라크는 현재 러시아 루크오일, 이탈리아 에니, 프랑스 토탈피나엘프 그리고 중국 인도 터키 등의 업체들과 석유개발 계약을 하고 있으며 규모는 약 380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은 한 업체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는 확인 매장량만 1120억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2618억배럴)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인 데다 대부분 얕은 지대에 매장되어 있어 생산비가 월등히 싸다.
▽현대건설 등 한국 어떤 영향 받나=현대건설 정근영(鄭根泳) 부장은 “현대건설의 채권은 순수 공사 대금이어서 이라크 정권이 바뀌어도 돌려 받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의 미수금 11억400만달러는 요르단 암만에서 이라크 바그다드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발전소 등 사회간접 시설이나 병원 아파트 같은 민간 시설을 지어주고 못 받은 돈이라는 것.
건설교통부 관계자도 “한국 업체의 채권은 대부분 공사 대금인 데다 한국은 이번 전쟁에 파병을 결정하는 등 적극 참여해 미수금을 돌려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