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합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 앞 마을버스 정류장. 지난 겨울 붕어빵 장사를 했던 김호태씨(가명·60·사진)는 이달부터 ‘주종목’을 도넛으로 바꿨다. 김씨는 구세군이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 ‘충정로 사랑방’에 기거하는 노숙자. 그의 ‘일터’인 수레 앞에는 ‘구세군 자활팀’이란 글씨가 써 있다.
그는 이달 초 500만원이 넘는 목돈을 손에 쥐었다. 2001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옥인동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며 번 돈이다. 김씨의 붕어빵 장사는 충정로 사랑방이 노숙자 재활프로그램으로 겨울마다 지원해 온 것.
그는 한때 경기 부천시 원미동에서 중국집과 정육점을 경영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가 덮치면서 외상은 받지 못하고 부채에 쫓기면서 그의 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다.
2000년 7월 그는 무작정 집을 나섰다. 어차피 돈을 못 버는 ‘가장’은 짐만 될 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주머니엔 지폐 한 장 없었다. 부천역 역무원에게 사정해 승차권 한 장을 얻어 영등포역에서 내린 뒤 노숙자가 되었다.
처음 1년은 방황의 시간이었다. 다른 노숙자들과 함께 매일 술을 마시고 안 피우던 담배도 배웠다. 가끔씩 공사장에서 날품을 팔았지만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술값과 경마비로 날렸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모습이 더없이 비참하게 느껴지고 가족들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가족을 찾아갈 수는 없었다. 무언가 생활을 바꿀 계기가 필요했다. 그때 ‘충정로 사랑방’측이 그에게 권유한 것이 붕어빵 장사였다.
2001년 가을부터 시작한 붕어빵 노점은 어설펐으나 스스로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사랑방과의 약속대로 매일 번 돈을 통장에 입금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목돈으로 되돌려 받았다.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 그가 누린 최고의 ‘사치’는 그의 생일이었던 지난달 13일 쉼터 동료들과 함께 소주와 부침개 2만원어치를 사먹은 일.
그는 노점을 하면서 생활이 안정되자 아내와 종종 만나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다. 그가 가출한 뒤 가족들은 월세집으로 옮겼다. 그는 붕어빵 장사를 해 모은 돈 중 150만원을 아내에게 생활비로 주었고, 지방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겐 기숙사비로 50만원을 쥐어 줘 오랜만에 가장 노릇을 했다.
그는 “좀더 노력하면 1년 내에 가족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대학 신입생인 아들이 알면 안 된다”며 꼭 가명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강지남기자 lay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