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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의 증시산책]'피그말리온 효과'와 '희망의 노예'

입력 | 2003-04-13 18:22:00


최근 들어 증시와 투자자들이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종합주가지수 600 아래에선 매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라크전쟁이 끝나 유가가 떨어지고 북한 핵 문제도 긍정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카드채 문제도 6월 말까지는 일단 해소됐고 SK㈜의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가능성으로 M&A가 천수답 증시에 단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긍정적 요소라는 주장.

반면 경기와 기업이익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주가가 한차례 더 떨어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이 끝나는 것은 장외 악재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 것뿐이며 종전이 경기와 기업이익 호전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것.

앞으로의 증시에 대한 견해가 이처럼 엇갈리는 것은 증시가 기로에 서 있다는 뜻이다. 주식을 사자니 떨어질 것이 무섭고, 현금만 갖고 있으려니 9·11테러 직후처럼 주가가 급등세를 나타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주식투자는 내가 증시와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내가 현금을 갖고 있으면 주도권은 나에게 있다. 하지만 증시의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주식을 산 뒤부터는 상황은 180도 바뀐다. 주식을 팔기 전까지는 주가가 떨어지면 원금까지는 아픔으로, 주가가 오르면 달콤한 꿈이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불안해한다. 이런 불안은 주식을 판 뒤엔 말끔하게 없어진다.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으면 상대방이 그 기대에 부응해 주는 현상을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조각을 잘하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이 상아에 멋지게 조각한 여성상을 현실의 여성으로 변하게 하고 싶다는 강력한 희망을 나타내자 아프로디테라는 신이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전설에서 따온 말이다.

피그말리온 효과에 반대되는 말이 ‘희망의 노예’다. 생각만 있고 실천이 없으며 희망만 먹고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식시장은 오늘만 열리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을 때 매수에 나서도 그다지 늦지 않다. 긴가민가할 때는 현금을 갖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때가 많다는 게 역사의 경험이다.

홍찬선 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