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타운에는 삭풍이 불고 있습니다. 봄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경기 침체 등에 가로막혀 증시는 아직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증권맨들은 이런 썰렁한 분위기를 주가의 움직임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변화를 통해 더욱 절실히 느낀다고 합니다.
첫째, 책상 위에 껌과 사탕이 쌓이기 시작한답니다. 여의도를 걷다 보면 늘씬한 여성들이 사탕과 껌 봉지를 나눠줍니다. 단란주점, 비즈니스클럽, 룸살롱 등 유흥업소 직원들의 판촉물입니다. 증시가 불황에 빠지자 자연히 유흥업소도 울상입니다. 그러다보니 손님을 찾아 길거리로 나선 것이지요.
둘째, 택시 잡기가 쉽답니다. 술 자리가 줄어들다 보니 새벽 택시 손님이 뚝 끊겼다고 합니다. ‘방향이 안 맞는다’며 야멸차게 승차 거부를 하던 택시 기사들이 많이 공손해졌다고 하네요.
셋째, “연봉을 70% 깎아도 좋습니다. 자르지만 마세요”. 잘 나가던 한 고참 애널리스트는 2년 전에 받던 연봉의 30%만 받고 있다고 합니다.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 몇 사람은 영업직원이 받는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최근 재고용됐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증권사는 몇 명의 스타를 만들어 천문학적인 연봉과 함께 이름을 띄운 뒤 이들을 회사의 간판으로 내세워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정공시제도 도입, 연구와 영업의 분리 등으로 애널리스트를 영업에 활용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수억원의 연봉으로 키운 스타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굴러가는 리서치센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일부 증권사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넷째, ‘사스가 무서워’. 외국계 애널리스트들의 잇따른 한국행. 해외 증권사들은 대부분 아시아, 태평양 지역 지사를 싱가포르나 홍콩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로먼스미스바니 홍콩지사에서 일하던 한국인 애널리스트가 일시 귀국했습니다. 사스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한국으로 일단 피신을 한 것입니다. UBS워버그 등 상당수 다른 증권사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정은 기자 ligh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