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감동과 이변이 있기에 수많은 팬이 열광한다.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꼭 이길 필요는 없다.
우리는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이틀 연속 김병현의 좌절을 보면서 자신의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애리조나는 사상 최강의 원투펀치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을 앞세워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7차전에서 루이스 곤살레스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자 실링이 가장 먼저 김병현에게 뛰어가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10년 묵은 체증이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최고의 명승부로 남은 지난해 한국시리즈는 어땠는가. 6차전은 야구의 신이 조화를 부린 듯했다. 9회 삼성 이승엽의 동점홈런과 마해영의 역전홈런이 잇달아 터졌고 순간 대구구장을 가득 메운 1만2000여 관중은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한동안 넋을 잃었던 LG 선수단도 비록 경기는 졌지만 삼성 팬들로부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았다.
올해는 어떤가. 삼성 기아의 2강과 롯데 두산의 2약으로 확연히 구분된 올 프로야구는 시즌초부터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곡예를 하고 있다.
2약으로 분류되는 팀은 벌써부터 문책론이 불거져나오는 등 선수단과 프런트가 엇박자를 걷고 있다.
롯데는 백인천 감독이 데려온 일본인 투수 모리 카즈마를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퇴출시켰다. 이에 질세라 백 감독은 프런트가 스카우트해온 보이 로드리게스를 타순에서 제외하는 맞대응을 했다.
구단에서 한때 재계약 불가를 발표했던 박정태를 최근 4번에 배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 서로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다. 그러면서도 백 감독은 여전히 언론을 향해선 4강을 얘기하고 있다.
두산은 9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인식 감독의 원만한 성품 덕분인지 아직 겉으로 드러난 잡음은 없다.
하지만 이런 김 감독이라고 타이론 우즈와 게리 레스, 진필중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공백에 불만이 없을까.
성적이 나쁘면 감독이 잘못한 탓이라고 자책하는 횟수가 늘어난 게 이를 증명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더라도 팬들에게 감동과 내일의 승리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 총력을 모아도 안될 이 때에 집안싸움이나 하는 팀이라면 차라리 스스로 문을 닫는 게 나을 것이다.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