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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하!그렇군요]GNI 1만달러시대 왜 살기 어렵다고하나

입력 | 2003-04-15 17:58:00


《작년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이 드디어 선진국 수준인 1만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도 부자나라가 됐다는 얘기이지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사업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정말 부자가 된 것일까요? 아니면 숫자가 갖는 함정일까요. 국민총소득과 환율의 경제학에 대해 알아봅니다.

반병희기자 bbhe424@donga.com》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지난해 1만13달러(약 1252만원)로 5년 만에 1만달러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통상 ‘1인당 GNI 1만달러’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여겨집니다. 미국이 1978년에 1만달러를 넘었고 일본과 영국은 1984년과 1986년, 대만은 1992년에 1만달러를 달성했습니다.

한국도 1만달러를 넘었으니까 이제 잘살게 된 것일까요. 경제가 해마다 5% 정도 성장하면 앞으로 7년 뒤에는 2만달러도 넘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작년에 6.8% 성장했으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설명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1인당 GNI는 1만달러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98년 외환위기 직후 때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한국갤럽이 전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활이 빠듯하거나(72%) 적자인 사람(15%)이 87%나 됐습니다. 여유있다는 사람은 겨우 13%였지요.

1인당 GNI 1만달러에 걸맞은 선진국 국민이 됐다는 자부심보다는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경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취직하고 그 자리를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몇 가지 원인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소득이 고르게 나눠지지 않아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I가 1만13달러니까 4인 가족의 소득은 평균 4만52달러(약 5010만원)입니다. 3인 가족은 3만39달러(3760만원), 5인 가족은 5만65달러(6260만원)는 돼야 중간이라는 얘기지요.

대부분의 가정이 아버지 혼자 법니다. 1년에 받는 급여(연봉)가 평균을 넘는 가족도 있겠지만 평균을 훨씬 밑도는 가족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중간소득(소득이 적은 사람부터 많은 사람 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의 절반도 안 되는 빈곤층이 전체의 12%나 됩니다. 중간소득보다 1.5배 이상 많은 상류층은 22.7%였습니다.

소득이 얼마나 고르게 나뉘어 있는지를 재는 지표로 ‘지니계수’가 있습니다. 지니계수는 0∼1에서 움직이며 숫자가 클수록 소득은 불평등하게 나뉘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나라 지니계수는 80년대 말에 0.3 수준을 유지하다 90∼97년에는 0.295∼0.283으로 떨어져 소득분배가 약간 개선됐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0.312∼0.320으로 높아져 소득분배가 나빠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잃은 실업자가 늘고 있습니다. 2월 말 현재 전체 실업률은 3.7%이지만 15∼29세의 청년실업률은 8.7%나 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9개 나라 중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5.7%에서 4.1%로 낮췄습니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어납니다.

1만달러를 넘어서는 데는 ‘환율 효과’도 적지 않았습니다. 원-달러환율이 지난해 달러당 1251.2원으로 2001년(1290.8원)보다 3.2% 떨어졌습니다. 환율이란 우리나라 돈(원)과 미국 돈(달러)을 바꾸는 비율입니다. 환율이 3.2%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돈의 가치가 그만큼 올랐다는 뜻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162만원에서 1253만원으로 7.8% 늘어났지만, 달러로는 9000달러에서 1만13달러로 11.5% 증가한 것도 바로 환율효과입니다.

1인당 GNI가 1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가 다시 미끄러진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한국은행도 경제성장을 이끄는 설비투자를 늘리고 신용카드 채권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2012년 1인당 GNI가 1만2331달러로 58위로 밀려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90년대 말에 겪었던 외환위기처럼 1인당 GNI 1만달러가 모래 위에 지은 화려한 집(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경제에 대한 지혜를 늘려야 할 때입니다.

▼국민총소득(GNI)란? ▼

한 나라의 실질구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은행이 99년부터 작성해 발표하는 지표. 한 나라에서 1년 동안 생산된 부가가치를 모두 합한 국내총생산(GDP)에서 다른 나라와 물건을 사고 팔면서 얻거나 잃은 교역손익을 더해 구해진다. 수입품에 비해 수출품 가격이 높아져 교역조건이 개선되거나, 원-달러환율이 오르면 GNI는 커지고 구매력도 높아진다. GNI를 그 나라 총인구로 나눈 것이 1인당 국민소득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