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 때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는 ‘불행지수(misery index)’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불행지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수치입니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많아져 실업률이 높아지는데, 소비자물가는 올라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카터 후보는 불행지수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공격해 승리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4년 뒤 대선에서 경제문제에 발목이 잡혀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레이건 후보는 당시 “불경기는 이웃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고, 불황은 당신이 실직하는 것이며, 경기회복은 카터가 일자리를 잃는 것”이라는 재치있는 말로 경제문제를 이슈화함으로써 승리의 기틀을 잡았다고 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물가를 잡기 위한 살인적인 고금리 정책과 민간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減稅)정책을 펴 경기활성화를 이뤘습니다. 집권 초기에 영화배우 출신의 ‘무식한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지만 거뜬하게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조지 부시 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돼 공화당이 장기(12년) 집권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에게 크게 졌습니다. 91년 ‘걸프전’에서 화려한 승리를 거둬 재선이 무난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클린턴 후보의 ‘중요한 것은 경제야, 바보야(It's Economy, stupid)’라는 캐치프레이즈에 힘없이 무너진 것입니다. 아버지의 실패를 알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이라크 전쟁에서 이긴 뒤 경제문제를 본격적으로 챙길 계획이라고 합니다. 내년 말로 다가온 대선에서 재선되려면 바닥에서 헤매는 경제를 살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1950년대 대선에서 ‘배고파서 못 살겠다’는 구호와 ‘갈아봐야 별볼일 없다’는 구호가 나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초근목피·草根木皮)로 배고픔을 달래야 했던 ‘보릿고개’ 시대에 경제 문제는 아주 중요한 이슈였습니다.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이어진 군사정권 때는 민주화가, 그 이후에는 지역감정이 이슈로 등장해 경제문제가 소홀해졌지만 앞으로는 경제문제가 대선의 흐름을 좌우할 것입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