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소관 사항이 아닌 일에 나섰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작 기본 업무에는 소홀한 모습이어서 실망이 크다. 김창국 인권위원장은 국회법사위원회에서 “인권침해가 북한에 많으냐, 남한에 많으냐”는 질의에 “계량화된 자료가 없다”고 답변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북한 인권상황에 대한 그의 인식을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김 위원장은 말썽이 나자 “북한의 인권 실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이 말하는 ‘계량화된 자료’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인권과 관련해서는 탈북자들의 증언, 비정부기구(NGO)들의 조사보고, 미 국무부와 국제사면위원회(AI)의 인권보고서 등 생생하고 신뢰성 높은 자료가 얼마든지 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심기까지 고려해 답변을 피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북한 인권문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김 위원장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헌법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한 주민의 인권상황을 파악하고 인권침해의 시정을 촉구하는 일이야말로 인권위의 기본 업무에 속한다. 그런 일을 안했다면 김 위원장은 직무를 태만히 한 것이기 때문에 반성부터 했어야 하는데 그는 당당히 몰라서 대답 못한다는 식이다.
인권위는 이처럼 소관업무에는 소홀하면서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 정부 안에서도 한국민과 국내 거주 외국인으로 활동범위가 제한된 인권위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라크 국민이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겪은 인권침해는 자료가 충분하고 정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반전성명을 낼 수 있었단 말인가.
유럽연합(EU)이 최근 유엔 인권위에 북한 인권문제 결의안을 제출하는 등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기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주무 기관인 인권위는 북한의 인권과 관련해 방향감각조차 못 잡고 있는 느낌이다. 인권위는 제 할 일이나 제대로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