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주요 업무계획 작성과정에 시민단체를 참여시키는 것은 물론 자문기구인 치안행정협의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한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방침은 여론을 수렴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공권력이 지나치게 인기 위주로 흐르는 포퓰리즘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시민 참여 확대: 경찰청은 15일 “투명하고 열린 경찰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시민감사관제’ 등 치안 행정 분야에 국민이 더 많이 참여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청은 우선 시민단체 등이 포함된 ‘시민단체·경찰협력위원회’(지방청)와 ‘행정발전위원회’(경찰서)가 경찰의 주요 업무계획 수립에 참여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위원회는 치안행정을 평가하는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민감사관제’를 도입해 경찰이 처리한 각종 사안에 의혹이 생길 경우 시민 감사관이 직접 감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민감사관은 지역별로 교사나 변호사 등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위촉해 활동하게 할 방침. 시민감사관은 특히 시민단체나 주민 연명으로 청구된 사안을 감사하며, 지역주민의 고충을 접수·처리하는 역할을 맡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또 지방행정과 치안행정을 조율하기 위해 설치된 치안행정협의회 개최를 정례화하고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키로 했다. 경찰청의 방안대로 될 경우 경찰업무에 대한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배경: 경찰은 이 같은 방안이 “참여정부의 개념에 맞게 치안행정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의 이면에는 수사권 독립 등 경찰이 추진 중인 주요사업에서 여론의 뒷받침을 받아내려는 속뜻도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4일 열린 경무관 이상 경찰 지휘관 워크숍에서 청와대 박범계(朴範界) 민정2비서관은 “수사권 독립은 정치권과의 거래나 흥정으로 얻을 수 없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경찰이 된다면 수사권 독립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강조했고, 경찰 간부들은 이를 “여론을 통해 수사권을 획득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하고 있다.
:논란: 그러나 경찰이 수사권 독립 등 반대급부를 기대하며 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지나치게 치안행정에 반영할 경우 공권력의 중심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경찰 행정은 주민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업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며 “시민 참여라는 말은 그럴 듯하지만 자칫 엄격한 법 집행정신이 무뎌질 수 있고 공정성도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처리한 사건에 대해 시민단체 등이 시민감사관을 통해 일일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국가기관의 공신력이 떨어질 수 있고 수사의 공정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그는 “시민단체 등의 참여 수위는 사회적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기관이 지나치게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참여’라는 명제는 바람직해 보이지만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경찰 본연의 기능마저 훼손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