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여당 맞아.” 대북 송금사건 특검법 재협상을 둘러싸고 당 중진들간에 ‘네 탓’ 공방이 벌어지고 당 개혁안이 신구주류간의 대립으로 넉달째 공전하자 최근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자탄 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지도부의 무기력에 신주류 개혁파의 ‘독선적 행태’가 맞부닥치면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상황이 계속되자 일각에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다.》
▼특검법 협상 등 지도부 무능 대놓고 거론▼
▽임시체제의 한계=15일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박병석(朴炳錫) 홍보위원장은 윤철상(尹鐵相) 수석부총무가 특검법 개정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하자 “앞에 대표가 앉아 있는데 이런 얘기하기 뭐하지만, 양당 지도부의 지도력에 모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지도부 탓을 했다.
박 위원장은 ‘여야 지도부’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과 정대철(鄭大哲) 대표 등 당내 신주류 지도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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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위원장의 지적에 이 총장은 “신뢰 정치를 저버린 한나라당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둘러댔지만 정 대표는 입장이 난처한 듯,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상황은 현 지도부가 사실상 임시 지도부인 데다 청와대와 당이 사실상 따로 노는 ‘구심력 부재’로 인해 여당의 정국주도력이 발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여기에다 신구주류간의 갈등에다 신주류 내에서도 지도부와 ‘탈레반 그룹’으로 불리는 소장 강경세력간의 이해가 엇갈려 사안마다 당내 각 세력이 부닥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신주류인 정 대표에 대해서도 신주류 강경파측은 “대표라는 기득권에 집착해 구주류와 손잡고 당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구주류의 박양수(朴洋洙) 의원은 “총선이 불과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인 데다, 대표가 공천권을 기대할 수 없는 임시체제이기 때문에 의원들 사이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 식으로 가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며 “현재의 당 상황은 특정인만 탓할 수 없는 과도기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주류 독선에 개혁안-재보선 곳곳 마찰▼
▽“내 뜻대로 돼야만 선(善)이다”=일방적으로 자기 의사를 밀어붙이려는 신주류 강경파들의 태도도 당의 혼선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5일 당무회의 의결로 ‘당 개혁안 조정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위원에 선정된 천정배(千正培) 신기남(辛基南) 의원은 “개혁안 원안을 수정하는 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각 계파가 고루 포진한 개혁특위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된 개혁안을 다시 조정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천 의원 등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신주류 내에서도 ‘지나치다’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 신주류 의원은 “강경그룹이 개혁안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지구당위원장직 폐지’에 대해서는 최초 개혁안을 성안한 개혁특위 내부에서조차 찬반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무조건 원안통과를 주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개혁특위 위원이었던 신주류 이재정(李在禎) 의원은 “당 개혁안을 마련한 뒤 특위 위원들이 기존 지도부나 구주류측을 상대로 적극적인 설득작업을 벌였어야 했다. 그런 정지작업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듯이 나가다 보니 상황이 꼬이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경기 고양갑 덕양갑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개혁국민정당 유시민(柳時敏) 전 대표를 ‘연합 후보’로 지원했는데도 개혁당이 경기 의정부 보선에 독자 후보를 내는 등 무원칙하게 이뤄진 ‘선거 연합’도 신주류의 독선의 결과라는 게 당내의 비판이다.
한 당직자는 “신주류가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는 고양에서 공천도 포기하고 유 후보를 밀었으나 의정부에서는 개혁당 후보가 ‘노무현 적자론’을 내세워 민주당 후보를 집중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서 고양 덕양갑에선 민주당 지역 당원들이 개혁당 유 후보 지원유세에 나선 신주류 당직자에게 “민주당은 없어지는 거냐”고 따지는 소동까지 빚었다.
▼盧대통령 분명한 입장 안밝혀 혼란 가중▼
▽“대통령도 책임있다”=당 운영이 이처럼 기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론도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는 신주류가 앞장서 ‘신당론’을 거론하며 기형적인 선거연합을 추진하는 등 당을 부정하는 태도로 나오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당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노 대통령이 당 개혁 등에 대해 분명한 의지와 태도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개혁파인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노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개혁을 위해 진력하는 것은 당정분리와 배치되는 일이 아니다”며 “노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인 이상, 당에 적극적으로 개혁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의원은 “이런 점에서 당 개혁이 지지부진한 데에는 노 대통령의 책임도 적지 않다”며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만나 밥만 먹지 말고, 이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