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이런 문화재가 있었다면 이렇게 방치하겠습니까.”
최근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울산 울주군 언양읍의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를 보러 갔던 이모씨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울산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같은 글을 올렸다.
경북 영덕에서 출발한 이씨는 암각화까지 이정표가 없어 행인에게 길을 물어 어렵게 암각화 진입도로에 들어섰다. 그러나 진입도로가 좁아 마주오는 차를 여러차례 피해야 했고 심지어 안전시설이 없어 추락위험을 감수하면서 암각화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정작 암각화는 바로 앞으로 강물이 흘러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암각화 앞에는 망원경조차 갖춰지지 않아 이씨 가족들은 암각화 앞의 사진만 보고 3시간 넘게 온 길을 허탈한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차라리 집에서 인터넷으로 사진을 볼 것을…’ 이라고 후회하면서.
‘울산의 대표 문화재’로 불리며 각종 기념물에 등장하는 반구대 암각화가 이처럼 ‘홀대’ 받는 것은 환경훼손을 둘러싼 울산시와 문화단체 간에 마찰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시가 ‘반구대 암각화 주변 관광자원화사업’을 수립한 것은 1999년 6월. 총 180여억원이 투입될 이 사업은 진입도로 2.33㎞를 너비 8m(현재 3.5m)로 확장하고 하류의 사연댐 때문에 연중 8개월 이상 물에 잠겨 있는 암각화의 실물크기 모형을 전시하는 선사문화유적관을 건립하는 것이 주요내용.
그러나 ‘반구대 사랑 시민연대’ 등 문화단체는 “진입도로가 넓어지면 차량이 많이 몰려 문화재가 훼손되고 암각화까지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며 반대했다.
시가 진입도로 사업 축소와 주차장 위치 변경, 암각화 주변 식당 이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문화단체의 반발은 계속돼 4년이 지나도록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사람이 많이 몰리면 환경훼손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곧바로 차를 타는 요즘 사람들에게 문화재를 보기 위해 왕복 6㎞나 되는 길을 걸어 다니라는 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 아닐까.수 십년전부터 반구대 암각화를 돌봐온 주민들도 진입도로의 조기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이 진정으로 문화재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인지를 울산시와 문화단체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울산에서
정재락 사회1부 기자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