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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위 對北 결의안]탈북자-北인권 긴급좌담

입력 | 2003-04-16 17:58:00


《유엔 인권위원회가 16일 북한 인권비난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탈북자를 비롯한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국제적인 현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라크전쟁 및 북한 핵문제와 경제난 등에 밀려 제대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창간 83주년 기획으로 7회에 걸쳐 ‘인권 암흑-떠도는 탈북자’ 시리즈를 게재한 데 이어 탈북자와 북한주민의 인권 문제를 점검하고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홍재형(洪在亨) 통일부 인도지원국장, 서재진(徐載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도희윤(都希侖) 피랍탈북인권연대 사무총장, 김성민(金聖珉)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한기흥(韓起興) 정치부 차장급기자가 맡았다.》

▽사회=탈북자 행렬이 이제 중국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탈북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도 총장=제3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은 사실상 도망자의 신분이어서 스스로 인권문제를 내세울 수 없는 참혹한 실정입니다. 지난해 3월 탈북자들이 중국 주재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할 때 우리(비정부기구·NGO)가 측면 지원한 것은 이들이 국제법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신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지 않고 중국 내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이나 제3국에 난민캠프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NGO의 활동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 국장=저는 탈북자들이 무조건 한국으로 와야 한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한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탈북 후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됐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제일 서러웠던 것이 제겐 나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모두 받아들인다고 이야기하고, 확실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사회=중국과의 외교적인 문제가 걸린 일이어서 정부로서도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홍 국장=탈북자 문제는 ‘탈북→제3국 체류→한국 입국’이라는 단계별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북한주민들이 탈북 이후에는 어디에 있든 기본적으로 인도적인 대우를 받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탈북자들을 국내에 들어오게 하는 과정인데 이에 관한 체계는 제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부는 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탈북자들은 보호받아야 하며 한국행 희망자들은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서 위원=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잘못된 체제와 지도자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탈북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구제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중국의 관할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중국이 탈북자 문제의 거대한 장벽이라는 것입니다. 중국은 탈북자들이 자국 내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하고 원하는 나라로 가는 것도 방해하고 있습니다. 언론에선 탈북자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책을 요구하지만 사실 정부로선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습니다.

▽홍 국장=중국의 탈북자 문제는 한국 북한 및 국제기구와의 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입니다. 다만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으로 제기되면서 중국은 과거와는 달리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NGO측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을 텐데요.

▽도 총장=탈북자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인 계획이 없어 사건이 날 때마다 땜질 형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NGO와 정부 사이엔 탈북자 문제 해결 방법에 관해 간극이 있을 수 있는 데 NGO가 앞서 나갈 때 정부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 그 간극을 메워줘야 합니다. 그래야 상호협력이 가능하지요.

▽사회=탈북자들은 한국에 오기까지도 힘들지만 입국하고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국장=그렇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 스스로의 인식도 변해야 합니다. 한국에 오면 정부가 임대주택과 생활비를 지원하는데 탈북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잘살아 보겠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탈북자들은 대체로 한국에서 경쟁력이 없다 보니 회사에 다니기보다는 자영업을 하고 싶어 합니다. 이에 필요한 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준다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서 위원=탈북자 문제에 대해선 비교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사회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북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완벽하게 취업하고 적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물론 사회주의 체제에서 국가의존적인 생활을 해오던 탈북자들이 한국에 온 뒤에도 정부가 모든 것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은 버려야 하겠지요.

▽도 총장=NGO의 고민은 재정보다는 국민의 의식문제입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가 대체로 탈북자에 포용적인 것으로 나타나 기쁩니다. 탈북자들을 위한 추가 세 부담에 대한 저항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 통일 때 서독인들이 동독인들을 감싸 안았던 것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은 탈북자로 인한 세금보다는 분단비용을 더 많이 부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와 NGO가 상호협력하면 국민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홍 국장=이질적인 체제와 사고방식에서 살다가 우리 사회로 왔기 때문에 어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부적응을 하루 빨리 치유하고, 조기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와 민간 탈북자간에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김 국장=국내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내가 완전히 한국 사람이 됐다고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탈북자들도 이제 요구만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는 동의합니다.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 탈북자 3000여명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다른 탈북자들이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제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3개 운영하는데 가끔 탈북자 문제가 생길 때 ‘미친 OO들 돌아가라’고 하는 욕이 뜨는 것을 보면 잠이 안 올 정도입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언론은 탈북자들을 인터뷰할 때 돈 많이 벌어 성공한 사람이나 아주 고생하는 사람을 주로 찾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성공한 탈북자는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론 언론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서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탈북자들을 소개해 줬으면 합니다.

▽서 위원=성공한 탈북자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지적은 정확합니다. 실패한 탈북자들은 대부분 ‘대박’의 꿈을 갖고 한국에 온 사람들입니다. 중국에서 고생하다가 사선을 몇 번 넘은 끝에 한국에 온 사람들은 대개 보답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는 자본주의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정부가 마련해 준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을 시작합니다. 북한의 암시장에서 장사했던 정도의 노하우를 갖고 사업을 벌이다가 정착금을 모두 날리기도 하지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한 5∼6년 정도 고생하고 나면 대체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비현실적인 꿈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엔 정착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사회=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그래도 북한주민들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입니다. 북한에선 절박한 생존 문제에 가려서 인권문제가 아예 제기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본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3.5%는 ‘대북지원과 북한인권 문제를 연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정부가 북한 인권문제에 너무 소극적인 것은 아닙니까.

▽홍 국장=목소리가 크면 적극적이고, 작으면 소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인도주의와 동포애 정신에 입각해 북한의 인권이 보편적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노력하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인권문제가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교류협력 추진과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북한 스스로가 인권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다는 것이지요.

▽서 위원=북한 인권문제는 당위성을 떠나 현실적으로 봐야 합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북한 인권을 걸어놓으면 북한이 어떤 형식의 대화에도 호응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발을 들여놓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이후에 인권문제를 거론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도 총장=그런 입장에는 단연코 반대합니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면 남북대화가 경직되기 때문에 제기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김대중(金大中) 정권 5년간 탈북자 납북자 등 북한의 인권문제에 있어선 아무 진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을 보면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개선됐다고 말하기는 어렵잖아요.

▽김 국장=북한 인권문제는 김정일(金正日) 정권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북한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고 봅니다.

▽서 위원=탈북자 포용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통일을 연습하는 것이고, 통일 이후의 통합에도 필요합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한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 적응에 실패한 사실이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지면 이들은 한국을 대안적인 사회로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탈북자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 없이는 통일준비가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정리=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