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는 암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암환자들은 예술 활동을 통해 ‘정신’을 치료받는다.
“나는 이곳에 오려고 아침마다 일어난답니다.”
사라 맥휴가 말하는 곳은 뉴욕의 창작센터(크리에이티브 센터·thecreativecenter.org)다. 두번째 암 발병 후 그녀는 이곳을 알게 됐다. 여기서 그림을 그리면서 새롭게 샘솟는 힘과 열정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젠 그림을 그리지 않는 생활은 생각할 수 없게 됐다”면서 “창작센터에선 병도 잊고 탐구하고 즐긴다”고 말했다.
2000년 맨해튼 26 스트리트의 빌딩 6층에 둥지를 튼 창작센터는 일주일에 닷새, 하루에 두시간짜리 미술강좌를 연다. 참가자들은 암과 싸우고 있거나 암을 이겨낸 사람들. 이들은 중국 수묵화에서 수채화까지 각종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드느라 열심이다. 한 참가자는 “이곳에선 암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여기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사 로빈 글레이저는 “뛰어난 예술작품, 판매할 작품을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면서 “참가자들이 혼자 있을 때도 할 수 있도록 간단한 기법을 가르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연간 6000명 이상에게 예술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센터에선 그림 외에도 음악연주 댄스 시낭송 즉흥극 등 각종 활동이 이어진다. 이달에도 가마에서 구운 구슬과 유리 펜던트 디자인을 배우는 3주짜리 코스(재료비 25달러), 유리디자인 공장 견학 등 다섯가지 무료 강좌가 개설된다. 참가자들의 작품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 큐레이터 등의 도움을 받아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창작센터는 변호사 겸 작사가인 애드리언 아세일과 소셜워커 출신인 제럴딘 허버트의 합작품. 9년 전 두 사람은 “여성 암환자와 암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창작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술교사 출신으로 그 자신이 암을 이겨낸 경력이 있는 로빈 글레이저는 “여성 암환자를 예술가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들은 암환자 무료 미술 워크숍을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1994년 조그만 사무실을 빌려 미술, 글쓰기, 퍼포밍 아트 강좌를 시작했다. 뉴욕의 예술가들, 특히 예술을 통한 치료법을 공부한 예술가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뉴욕의 암 전문병원인 슬로안 케터링 병원의 골수이식 병동과 심리치료실에서 소셜워커로 일했던 허버트 창작센터 소장은 “약은 병든 몸을 고치고 예술은 병든 정신을 낫게 한다는 것이 나의 신조”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참가자들이 해낼 것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들을 만들어 놓고 밝은 얼굴로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기만 하다.
센터가 문을 연 지 3년 후엔 ‘병원 예술가’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예술을 통한 치료법을 공부한 예술가들이 병원을 분담해 암환자의 침대 곁으로 찾아가 환자들이 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13명의 병원 예술가 중 한명인 린다 터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용기와 힘, 그리고 낙관주의적 태도에 경외감을 느낀다”면서 “이들과 함께한 경험이 내 인생과 작품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엘리사 브롬버그는 “환자들에게 병 이외의 것에 집중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센터측은 2001년 환자 및 병원관계자를 대상으로 ‘병원 예술가’ 프로그램의 효과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환자가 더 낙관적이 되었다(84%) △환자의 권태감이 줄었다(75%) △환자가 고통을 덜 느꼈다(67%)는 답변을 얻었다고 밝혔다. 작년엔 이들 병원 예술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개최돼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예술가 및 병원관계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가졌다.
센터는 22명의 기부자와 11개 지원기관이 낸 돈으로 운영된다. 제약 및 화장품업체 존슨앤드존슨이 최근 지원한 돈으로 이 센터는 올해 ‘병원 예술가’ 프로그램에 댄스와 글쓰기 분야도 포함시켜 환자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센터측은 밝혔다. 허버트 소장은 “올해의 역점 사업은 이스라엘 이탈리아 등에서 온 예술가들을 포함해 병원예술가들의 훈련 프로그램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또 “한국의 예술가들이 이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현장 방문을 한다면 언제나 환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권희특파원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