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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임채청/시리아

입력 | 2003-04-17 18:26:00


13세기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카올리’라는 지명이 고려를 지칭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게 고려를 지칭했다면 한국을 서구에 최초로 알린 것이 된다. 그러나 중동의 문헌엔 이미 9세기 중엽부터 한국이 등장한다. “중국의 맨 끝에 ‘신라’라는 산이 많은 나라가 있다. 그 나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자가 아닌 문자로 한국을 소개한 최초의 문헌인 이븐 후르다드비의 책에 나오는 얘기다. 이라크전을 계기로 이라크가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데 미국의 다음 표적으로 떠오른 시리아는 또 어떤 나라인지 생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1000년 전 중동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나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기독교인들은 좀 다를 수 있다. 성경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사울이 기독교도를 탄압하러 가다 예수의 음성을 듣고 사도 바울로 거듭난 ‘다메섹’이라는 곳이 바로 5000년 고도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다. 구약의 신명기에 이스라엘의 조상을 ‘유리(遊離)하는 아람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아람이 곧 시리아다. 신약의 마태복음에도 ‘예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라는 구절이 있다. 다마스쿠스엔 가인이 아벨을 죽인 곳으로 알려진 장소도 있다고 한다. 구약의 이사야서에 나오는 앗수르(아시리아)는 시리아와 인접한 이라크 북부로, 4500년 전 대제국을 이뤄 시리아까지 지배했다.

▷지중해 지역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연결하는 통상의 요충지이자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위치한 시리아는 수많은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렸다. 그중에서도 아시리아의 통치가 가장 잔혹했다. 이사야는 “그들이 사자처럼 바다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려와 지나는 곳마다 슬픔과 아픔을 남겼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중동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말처럼 그 곳엔 수많은 민족의 흥망성쇠와 끝없는 전쟁의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외국어대 김정위 교수의 ‘중동사’는 “이곳의 거주민은 생존하기 위해 신과 인간들에 대항해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고 쓰고 있다.

▷20세기 들어 아랍민족주의가 태동한 곳도 시리아였다. 오스만터키 제국 치하에서 아랍부활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1958년엔 시리아와 이집트가 합병해 ‘아랍연합공화국’을 수립한 적도 있다. 이라크전 와중에 시리아가 가장 노골적으로 반미(反美) 친(親)이라크 성향을 보인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역으로 미국 역시 시리아가 고울 리 없다. 중동엔 아직도 역사적 구원(舊怨)의 살기가 감돈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