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 중국 북한간 3자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라크 공격으로 ‘악의 축’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응징과 승리가 명백해진 상황에서, 북한이 북-미간 대화 고수에서 다자회담으로 선회한 것은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이 처음부터 북핵 회담에 끼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핵 문제 해결엔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북아시아 6자회담이 가장 적절하다. 미국 중국 북한이 참여하는 3자회담은 중장기적으로 한국에 득보다 실이 크다. 한국이 초반에 참여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반도 군사안보문제 해결에 있어 1993년 이후 북한이 보여 왔던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만약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핵 문제가 맡겨지면, 국제의무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제재방안을 논의하게 되어 이라크 사태의 재판이 될 우려도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는 핵보유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비핵화를 지도할 강제력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을 막지 못하면 동북아 전체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위험을 알고 북한에 대해 압력과 설득을 병행하고 있다. 북한도 조건만 맞으면 조기에 핵계획을 포기해야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북한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4개국에 대해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다. 90년대 플루토늄 핵개발에 이어 2000년대 우라늄 핵개발을 시도한 북한은 미국과 주변국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다. 이번이 신뢰를 회복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안전보장과 경제난 해소를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주변국들이 북한에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공식적인 유인책으로 원유와 식량을 사용할 것이다. 미국의 안전보장과 함께, 한미일 3국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해 제공하고자 했던 에너지 보상책을 6자회담에서 다른 형태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가스 에너지 제공을 대북 유인책으로 사용할 수 있다.
북한에 주는 유인책을 조건으로 동북아 5개국은 북한의 핵개발 포기 검증단 구성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단은 사찰의 의무만 부과했지 북한에 아무런 인센티브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동북아 5개국 사찰단은 북한에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의 비핵화에 이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해 6자회담 틀 내에서 남북한과 미국의 3자회담이라든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중국도 참여하는 4자회담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 회담을 상설화해 일본의 비핵화도 공고하게 하면서 다른 안보문제도 협의할 수 있는 ‘동북아 안보협력 회의’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자회담에서 출발해 6자회담에 이르는 데는 너무 많은 우여곡절이 따르며 다자회담 자체에도 한계가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자회담은 양자회담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국가의 이해가 다방면에서 충돌하기 쉬워 회담을 통제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북한의 핵 포기와 그 검증방법, 북한에 대한 에너지 제공과 비용 분담, 북한의 대미 주장 고수와 미국의 대북 입장 고수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게 되면 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해지고 동북아 국가들의 관계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은 사전 정책 조율을 해 한 가지 입장을 갖고 회담에 임해야 하며 한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에 ‘한국이 미국만 추종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납득시켜야 한다.
동북아 6자회담 체제는 동북아 국가들이 오랫동안 염원해 오던 것이다. 참여정부는 이를 위해 종합적인 정책대안 마련에 국민과 우방들의 지혜를 결집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용섭 국방대 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