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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파워게임의 법칙'

입력 | 2003-04-18 17:58:00

‘파워게임의 법칙’의 저자인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등을 파워게임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파워게임의 법칙/딕 모리스 지음 홍수원 옮김/472쪽 1만3000원 세종서적 펴냄

아무리 훌륭한 이상을 가지고 있어도, 이겨야 할 때 이기지 못하면 꿈을 이룰 수 없다.

권력과 지위를 놓고 벌이는 파워게임에서의 진리가 그것이다.

정치는 현대의 가장 흥미로운 파워게임. 이 책은 정치 승부사들이 핵심 파워를 차지하기 위해 활용한 전략들을 간결한 지침으로 정리하고, 지침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유명 정치가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면밀하게 분석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저자인 딕 모리스는 돈을 받고 전략을 세워주는 ‘모사꾼’이라고 자처하지만 1996년 빌 클린턴의 재선 성공을 돕는 등 지금까지 ‘무패의 신화’를 기록한 백전노장 정치컨설턴트. 2000년 방한했던 저자는 “한국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충실한 나라일수록 앞으로는 네트워크의 힘을 이해한 후보나 정치인이 놀라운 성과를 거둘 것이다”는 ‘족집게’(?) 예언력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제시한 파워게임의 법칙은 ‘상대의 이슈를 선점하라’ ‘첨예한 이슈로 분열시켜 정복하라’ ‘겸손과 비전으로 자신의 조직을 개혁하라’ ‘첨단기술로 대중의 감성을 휘어잡아라’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적대자마저 결집시켜라’ ‘원칙이 아니라 싸우는 방법을 바꿔라’ 등 여섯가지.

이슈 선점에 관해선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이긴 조지 W 부시의 성공사례를 들 수 있다. ‘동정심을 지닌 보수주의자’를 표방한 그는 ‘민주당 특허’인 복지 이슈를 부각시켜 승리했다. 공화당의 링컨은 동양의 ‘이이제이(以夷制夷)’와 흡사한 제2전략을 구사한 정치가. 그는 노예제를 내세워 민주당을 양분시킨 뒤 승리했다.

‘겸손과 비전’ 전략의 달인은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한때 노동당의 최대 협력자였던 노동조합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의 가장 무거운 짐으로 변했다. 블레어는 4만명에 이르는 노조원과 당원을 직접 만나 노조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당 개혁에 동의하도록 설득해냈다.

실패사례에서도 배울 점은 많다. 남보다 일찍이 환경에 주목했던 선구자인 앨 고어는 선거에서 별 성과를 못 거두자 지난 대선에서 환경을 핵심이슈로 내세우지 않았다. 원칙을 위한 투쟁을 포기한 고어는 부시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패배가 두렵다고 원칙을 뒤집어선 안 된다.

1970년대 미국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은 ‘적과 동지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몰랐다. 그는 당내 보스들의 밀실정치를 개혁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국 그들의 ‘물귀신 작전’에 말려들어 침몰했다. 개혁이란 미묘한 작업을 추진할 때는 사람 다루는 솜씨에 모든 일이 좌우된다는 점이 교훈이다.

책 말미에 저자는 파워게임에서 일시적인 승자가 아닌 궁극적인 승자가 되고 싶다면 용기, 겸손함, 도덕적 규율, 낙관적 사고, 올바른 원칙을 지녀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겸손하되 원칙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성공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오만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정한 원칙과 신념에 대한 호소를 통해 승리한다 할지라도 분명 의견이 다른 집단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한 집단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리더와 파벌의 우두머리는 명백히 다르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이라도 이 책을 읽은 뒤에는 어렴풋하던 정치 판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한 자신감이 생길 것 같다. 이책에서 소개하는 전략이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대선전략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는지 나름대로 짚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