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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에이즈 등 “동물發 바이러스 인체감염땐 치명적”

입력 | 2003-04-20 17:40:00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순식간에 세계로 퍼뜨렸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대수롭지 않은 병원체다. 보통 감기의 3분의 1이 이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데 기존의 코로나바이러스보다 훨씬 독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출현해 홍역과 비슷한 4%의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 연구팀이 이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해독한 결과 2만9736개의 염기쌍을 가진 복잡한 RNA 바이러스였으며 칠면조 및 소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비슷했다.

비교적 얌전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게 무서운 바이러스로 돌변했을까? 과학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동물과 사람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인수(人獸)공통바이러스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전문가들도 동물의 몸 속에서 만들어진 새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을 감염시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중국 광둥(廣東)지방의 동물과 환자를 조사중이다.

실제로 광둥에서 최초로 사스에 감염된 사람도 오리와 접촉이 많은 조류 판매상과 주방장이었다. 중국 광둥지방은 지구상에서 오리 닭 돼지 등 가축 사육농가가 가장 밀집해 있어 전염병 학자들이 늘 경계해 온 지역이다. 특히 광둥 사람들은 원숭이의 뇌, 뱀, 고양이, 심지어는 쥐까지도 먹는 괴이한 식습관을 갖고 있다.

서울대 정구흥 교수(바이러스학)는 “숙주동물이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서로 섞여 새로운 바이러스가 쉽게 만들어진다”며 “이처럼 동물에서 유래한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해 사람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류나 돼지를 숙주로 하는 독감 바이러스와 원숭이에서 유래한 에이즈 바이러스가 큰 피해를 준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을 비롯해 1957년 아시아독감, 1968년 홍콩독감, 1977년 러시아독감, 1997년 홍콩의 조류독감은 큰 피해를 냈다. 과학자들은 이들 악성 독감이 조류에서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와 사람의 바이러스가 돼지 몸 속에 들어가 유전자 재조합을 거친 뒤 사람에게 전염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실험실에서도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최근 네덜란드 유트레히트대 페터 로티에 박사는 하나의 유전자를 바꿔치기 해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로 쥐를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다. 로티에 박사는 “이 실험은 동물과 인간의 바이러스가 만나 유전자가 재조합되면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다행히 아직 한국에는 사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동물과의 접촉은 조심하는 것이 좋다. 울산대 의대 조영걸 교수(바이러스학)는 “개와 사람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미생물만 하더라도 무려 60여종이나 된다”며 “특히 건강이 나쁜 사람은 가축이나 애완동물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항공기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바이러스가 인터넷만큼이나 빨리 전파되는 것도 큰 문제다. 바이러스의 권위자인 학술원 이호왕 회장은 “광둥에서 사스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한 명의 중국인 의사가 2월 21일 하루 홍콩 메트로폴호텔에 투숙한 뒤 이 호텔에서 감염된 12명의 투숙객이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베트남 아일랜드로 가 3월 26일까지 249명을 감염시킨 것이 초기 전염병 확산에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허브’ 홍콩이 전염병의 허브가 것이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