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계 관계자들은 현재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최고의 한국화가로 이왈종 박성대씨를, 최고의 서양화가로 고영훈씨를 꼽았다. 또 가장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작가로는 설치작가 이불씨가 선정됐다. 전시 기획력이 가정 우수한 미술관과 화랑에는 각각 호암과 갤러리 현대, 참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하는 미술관에는 아트선재센터가 꼽혔다. 본보 문화부는 최근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 미술관 화랑 관계자 평론가 60명을 대상으로 각 분야 최고 작가와 최고 전시관을 뽑아 달라는 설문을 발송해 13일까지 총 45명으로부터 응답을 얻었다. 작가별 설문에서는 그 대상을 1945년 이후 출생한 작가로 한정했다. 문향수는 작가 부문이 10개, 미술관 화랑 부문이 7개였다. 무응답이거나 3개의 응답을 한 경우도 동등하게 설문에 포함시켰다.》
▼작가 ▼
◇회화부문
80년대와 90년대에 주목받았던 중견 작가들도 최근 들어서 두드러진 활동이 없는 경우에는 많은 추천을 받지 못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5∼6년만 쉬면 잊혀지기 쉬운 한국 화단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황창배씨(추천횟수 9)는 작고 작가이면서도 많은 추천을 받는 등 그의 재능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현역 대상의 조사라는 점에서 순위에서 배제했다.
최고의 서양화가로는 고영훈이 꼽혔다. 그는 다양한 재료에 내면적 상상력을 가미한 하이퍼 계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여년간 일관된 자기 세계를 구현해 오면서 조형성과 대중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풀이됐다.
이석주 김홍주씨가 많은 추천을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임옥상씨는 근래 다양한 실험작업을 하면서 미술의 이슈화를 선도해 온 점이, 권순철 이기봉 조덕현씨(각 4) 등은 40대 작가로서 조형적 탄탄함이 인정받았다.
서양화 부문은 한국화에 비해 표가 많이 갈렸다. 추천인의 취향과 선호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몇몇 작가가 두드러지는 한국화에 비해 ‘각개약진’ 스타일의 서양화 판도를 읽을 수 있었다.
원로작가를 제외해 달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한국화의 서세옥, 서양화의 박서보씨도 일부의 추천을 받아 그들의 작가적 역량에 대한 높은 평가를 알 수 있었다.
◇설치 사진 공예
회화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무응답이 많아 표가 분산됐고, 그나마 주로 매스컴이나 국제 무대에 널리 알려진 작가들에게 추천이 집중되었다.
최고의 설치 작가에는 이불씨가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순위에는 없지만 강익중씨(5)는 최근에 신진 작가층이 급부상한 탓인지 의외로 저조한 추천을 받았고 젊은 작가 최정화씨(5)의 부상도 눈에 띈다. 백남준씨(4)는 원로란 점에서 추천 대상에서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천을 받았다.
사진분야에서는 배병우 구본창씨가 박빙의 양강 구도를 유지했고, 민병헌씨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강운구(5) 주명덕(4) 황규태씨(3)는 모두 45년 이전 출생한 작가들임에도 불구하고 추천을 받아 작가적 역량을 입증했으나 순위에선 배제했다.
조각분야 최고는 현존 작가를 제치고 작고 작가 류인(7)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한국 조각계가 조형성 작품성 실험성 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생존작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순위에서는 배제했다. 조각 분야의 경우 김영원 강관욱 김인겸 최인수씨 등이 순위에 올랐다.
판화 분야에서는 김승연씨가 1위로 꼽혔다. 작고 작가 오윤씨(3)도 추천을 받았다. 공예분야의 경우 서울대 동기 동창인 유리지 김승희씨가 공동 1위를 차지, 양강 구도를 재삼 확인해 주었다.
한편 장르를 통틀어 미술계에서 가장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되는 작가는 이불씨였다. 백남준 이우환씨는 설문대상에서 제외한 원로 작가임에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백씨는 현존 작가 중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혔으며, 작고 작가 중에는 박수근 이중섭이 1위로 꼽혔다.
30세 이상 50세 미만 작가들 중 가장 기대되는 작가들을 묻는 항목에서는 2회 추천을 받은 작가들이 12명, 1회 추천을 받은 작가들이 무려 94명에 달해 젊은 작가군의 다양한 지형도를 보여줬다. 이 연령대에서 분야별 최고추천을 받은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평면=유근택 홍승혜 △입체(설치, 비디오아트, 미디어 등)=이불 △사진=구본창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미술관·화랑 ▼
최고의 전시공간으로 선정된 호암갤러리에서 전시를 보고있는 관람객들.사진제공 호암갤러리
최고의 전시공간을 묻는 질문에서는 단연 삼성 미술관이 운영하는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갤러리와 갤러리 현대가 꼽혔다. 또 참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하는 미술관은 아트선재센터가, 화랑은 사루비아다방과 쌈지스페이스가 공동 1위로 꼽혔다.
신인작가 발굴에 가장 적극적인 미술관에는 성곡, 화랑에는 쌈지스페이스가 꼽혔다. 작업실 마련 등 작가 지원을 열심히 하는 화랑으로는 가나아트센터, 해외시장 개척에 가장 적극적인 화랑으로는 박영덕화랑이 많은 추천을 받았다.
갤러리 현대는 작품을 믿을 수 있고 고객들의 미술품 환매 요구에 잘 응하는 등 신뢰도가 가장 높은 화랑으로도 선정됐다. 현대 미술문화 발전에 가장 기여한 미술관과 화랑으로는 삼성미술관과 갤러리 현대가 나란히 꼽혔다. 신흥 미술관으로 영은미술관(경기 광주시)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최고의 전시공간을 묻는 질문에서는 특정 미술관과 화랑이 집중적인 추천을 받았다. 이들 공간이 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과 기여도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시공간이 미술의 발화점이자 추동력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 미술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현상으로도 풀이된다. 이에 비해 국공립인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대한 추천은 매우 저조했다. 이들 공간의 전시내용이나 운영방식에 대해 미술인들의 호응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