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핵잠수함’ 김병현(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20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특유의 폼으로 볼을 던지고 있다.왼쪽 아래는 김병현이 2회초 우익수 키를 넘기는 1타점 2루타를 터뜨리고 있는 모습.
오기와 집념이 메이저리그 벽을 허물었다.
‘밑에서 던지는 ‘잠수함’ 투수는 선발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게 메이저리그의 정설. 언더핸드스로투수는 공도 빠르지 않은데다 빅리그에 즐비한 좌타자들을 제대로 상대해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업한 김병현(2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잠수함 투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20일 원정경기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그것을 보여주었다. 7이닝 5안타 3실점의 ‘퀄리티 피칭(선발로 6이닝 이상 던지고 3자책점 이하로 막는 것)’으로 팀의 4-3 승리를 일궈낸 것.
이날 승리는 여러모로 값진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서부조 우승을 차지한 애리조나는 선발진이 무너지며 이 경기 전까지 5승12패로 조 최하위. 더구나 지난해 투수 3관왕(다승 탈삼진 평균자책)을 차지한 에이스 랜디 존슨은 무릎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해 있고 이날 또 한명의 기둥투수인 커트 실링마저 갑작스런 맹장염 수술로 선발로테이션에서 빠졌다. 가뜩이나 부진한데 팀의 ‘차’ ‘포’마저 떼고 경기를 치러야 할 상황.
김병현도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었다. 그는 15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부러진 방망이에 오른쪽 발목을 맞아 이날 경기 등판이 어려웠다. 그러나 김병현은 “무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려울 때 팀을 위해 뭔가 해냈다는 보람을 느끼고 싶어 등판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전날 침까지 맞았다.
김병현은 4회 3점을 내주긴 했으나 나머지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타석에선 1타점짜리 2루타까지 뽑아냈다. 그가 타점과 2루타를 기록한 것은 메이저리그 5년 만에 처음. 이 경기 전까진 메이저리그 통산 17타수 2안타(0.118)에 불과했다.
98개의 공을 뿌린 김병현이 메이저리그 최다이닝을 소화하며 마운드에서 잘 버티자 애리조나 선수들도 집중력을 발휘했다. 애리조나는 5회 곤잘레스가 역전 투런홈런을 날렸고 8회 마운드에 오른 마무리 매트 만타이가 2이닝을 퍼펙트로 막아 한점 차 승리를 지켰다.
그동안 3경기에서 잘 던지고도 팀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3연패에 빠졌던 김병현은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정말 어렵게 이겼다”고 말했다. 팀동료인 베테랑 마크 그레이스는 “사이영상을 받을 만한 투구였다”며 김병현의 등을 두드렸고 스포츠전문채널 ESPN 홈페이지는 톱기사로 다뤘다. ESPN은 메이저리그 유일의 잠수함 선발투수로 전업한 김병현이 ‘돌파구를 마련한 날’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시카고 컵스의 최희섭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4타수 1안타 1타점으로 5경기 연속안타와 타점을 이어가며 시즌타율을 0.300(40타수 12안타)으로 끌어올렸고 애틀랜타의 봉중근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전에서 중간계투로 나가 2이닝 무실점으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김병현 세인트루이스전 투구내용타순타자1회2회3회4회5회6회 7회①비나투땅 사구투땅 一땅②팔메이로좌비 우비 우비 볼넷③롤렌우비 三땅우비 三땅④에드먼즈 볼넷 볼넷우2 ⑤렌테리아 중2 중안우비 ⑥마르티네스 중비 좌2 우비 ⑦마레로 투땅 투땅 우비 ⑧매서니 투땅 좌안
삼진 ⑨사이먼터치 유땅투땅 로빈슨 중비*앞은 수비위치, 뒤는 타구상황(비=뜬공 땅=땅볼 안=안타 2=2루타 사구=몸에 맞는 볼)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