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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바그다드]'인류역사의 寶庫' 바빌론 르포

입력 | 2003-04-20 18:02:00



“hold up(손들어), stay there(거기 서)!”

바그다드 남쪽 100㎞ 지점 바빌론. 기원전 2300년 수메르 도시국가 시절부터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급사하기까지 메소포타미아의 수많은 왕조가 명멸했던 인류 역사의 보고(寶庫).

19일 이곳을 찾은 기자는 알렉산더 대왕이 축조했다는 유적 입구의 대형 원형극장 계단을 오르다 수색작전 중이던 미군의 갑작스러운 제지를 받았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바벨 신탑(神塔)을 본떠 새로 축조한 대통령궁을 ‘접수한’ 미군이 500m 동쪽 원형극장에까지 주둔지를 넓히던 중이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바빌론 대통령궁의 인근 원형극장에서 미군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경비를 서고 있다. -바빌론=박영대특파원

3명의 수색병이 일제히 중간포복 자세로 기자에게 M16 총구를 겨눈 가운데 한 병사가 기자의 몸을 다급하게 수색했다. 이 병사를 겨냥해 이라크 스나이퍼(저격병)의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덩달아 등골이 서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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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Babylon)이란 지명은 ‘밥 일리(Bab-ili)’ 즉 ‘신(神)의 문’이란 뜻에서 나왔다. 현존하는 바빌론 도성 유적은 ‘바빌론의 유수’로 잘 알려진 신(新)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2세(기원전 605∼562년) 때 대부분 만들어진 것.

원형극장 내 무대 구석에선 갓 수색을 마친 미군들이 담배를 빼어 물었다. 강적 페르시아를 패퇴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한 알렉산더 대왕이 2300여년 뒤 세계 최강 군대의 병사들에게 쉼터를 내준 셈이다. 공터 옆에서 불타는 목재를 가리키며 “전투가 있었는가”라고 물었더니 “없었다”고 답한다. 황량해 보이는 이곳도 주민들의 약탈을 피해가진 못했나 보다.

극장을 훑고 난 뒤 300m쯤 더 들어가자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를 위해 지었다는 남색문의 모형이 나타나고 이 문을 지나 느부갓네살 박물관(바빌론 박물관)에 들어섰다. 구석 기념품 가게는 이미 약탈자들에게 털리고 불에 타 처참한 몰골만 남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기원전 1600년 고대 바빌로니아의 융성기를 열었던, 인류 최초의 성문법을 만든 함무라비의 법비(法碑) 모형이 세워져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비밀을 가득 담은 이 법비는 1902년 한때 바빌로니아를 병합했던 다른 왕조의 도읍을 연구하던 프랑스의 동양학자에게 발견돼 파리로 넘어갔고, 이라크는 할 수 없이 그림으로 비문을 본떠 박물관 벽에 붙였다. 전쟁은 현재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파괴한다.

박물관 뒤편의 쪽문을 지나 북쪽으로 걷자 정면에는 폭 4m 정도의 신바빌로니아 시대의 개선 행진로가, 왼편에는 느부갓네살 왕궁(남궁)이 나타났다. 수천년 동안의 약탈과 자연재해 등으로 터만 남은 궁성을 후세인 대통령이 대부분 재건한 것. 성곽 벽돌 100개마다 하나씩 ‘1989년 후세인 대통령이 재건축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느부갓네살이 이국 출신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피서지로 지었다는 가공정원(架空庭園·공중에 떠있는 정원)이 이 궁성에 있었다지만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기원전 2010년쯤 수메르인들이 세우다 신의 저주를 받아 포기했다는 신탑도 추측만 무성할 뿐 아직도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적 주변에는 장갑차량을 탄 미군들만 눈에 띄었다.

바빌론의 빛나는 인류 유산은 사막의 건조한 풍화작용에 전쟁과 약탈, 통치자의 야심 등이 어우러지면서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라크전쟁은 고고학자들에게는 ‘재앙’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중동 최고의 박물관인 바그다드 이라크박물관이 약탈을 당해 만신창이가 된 것을 제외하면 비교적 유적지 피해는 드물었다. 당장 돈 될 만한 물건이 없었기 때문일까.

바그다드시 6㎞ 북쪽 카디마인 마을의 카디마인 대사원. 알 만수르 등 왕족의 묘지가 들어선 이곳은 바그다드에서 가장 크고 성스러운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대개 중앙에 둥근 돔 하나를, 좌우에 두 개의 이슬람식 첨탑(미나레트)이 서 있지만 카디마인 사원은 중앙에 금박을 입힌 황금 돔이 2개, 황금 첨탑도 모퉁이에 하나씩 4개나 있다. 사원 주변 주택가에는 드문드문 폭격을 받은 곳이 눈에 띄었지만 다행히 이곳은 폭격을 피했다.

18일 이슬람의 휴일인 금요일을 맞아 사원과 사원 앞 광장에는 예배를 하러온 모슬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티그리스강을 건너는 3개의 다리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알 슈하다 다리의 동안(東岸)에는 1233년 아바스왕조 말기에 세워진 이슬람 최고(最古)의 무스탄시리야 대학이 서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했지만 한때 아랍어 코란 법학 논리학 천문학 산술학 약학 의학 등을 가르쳐 인류문명 발전에 큰 공헌을 한 대학이다.

관리인인 가지 후시안(54)은 “전쟁으로 건물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다행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뒤쪽 대형 사헤르 알 샤피 쇼핑센터 등은 폭격과 약탈로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말았다.

유물은 살아남았지만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셈이다. 전쟁의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바빌론=박래정특파원 ecopark@donga.com

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

이훈구특파원 uf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