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승리 선언으로 일단락된 듯이 보이는 이번 이라크전쟁이 끊임없는 화제가 되고 있다. 첨단무기의 위력, 다수 민간인의 살상, 함락 후의 약탈행위 등에 이어 화제가 되는 인물이 이라크의 사이드 알 사하프 공보장관이다. 바그다드가 미군들의 무덤이자 지옥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그의 배짱과 독설이 큰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약자를 편드는 심정에서 나온 면도 있고 직무에 충실한 그의 자세에 감탄하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이라크 승리 장담하던 공보장관 ▼
미영 연합군의 전황 발표가 심리전의 일환으로 과장됐을 것이라는 추측 보도가 있었다. 군복차림에 베레모를 쓴 사하프 장관의 반박성명은 이러한 추측에 설득력을 부여한 것이 사실이다. 바그다드나 티크리트가 맥없이 함락된 것이 얼마쯤 의외란 느낌을 준 것도 사하프 장관의 고군분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TV와 선전의 힘은 이같이 막강하다.
이제 그의 언행은 몰락에 직면한 체제측의 상투적인 큰소리였음이 드러났다. 명백한 사실 왜곡이요 거짓으로 일관한 일장춘몽(一場春夢)의 희극이었다. 그의 입장에선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같은 사실을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세계의 권력자나 독재자들은 그의 광대 짓에 갈채를 보내며 그와 같은 측근을 갖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를 모델로 삼아라는 지시를 내렸음직도 하다.
20세기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은 소련의 등장과 그 해체일 것이다. 사회주의 소련과 동유럽권의 몰락을 그 시점에서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대해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도 역사가로서의 자괴감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의 소련문제 전문가라는 사람도 소련 붕괴 며칠 전 TV에 나와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실각 가능성을 부정했다. 붕괴 이후에 드러난 소련과 동유럽권의 사회적 경제적 실체는 상상 이상으로 열악한 것이었다. 동유럽권의 우등생이라던 동독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몰락을 예견하지 못하게 한 요인은 무엇이었던가. 동독의 경우 정식 요원 10만명, 비공식 정보 제공자가 30만명에 이르렀다는 비밀경찰이 공고한 체제의 외양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체제의 공고성을 과신하게 한 것은 사회주의 정권이 공유했던 고도의 선전술이었다고 생각한다.
홉스봄은 ‘공산당선언’이 정치적 수사로서는 거의 성서(聖書)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며 그 저항할 길 없는 박력을 지적하고 있다. 급진적 전통의 문서들이 대체로 비현실적이지만 자극적 수사학을 공유하고 있으며 현실정치에서 그것은 과대포장의 선전술로 나타났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향이 있다. 주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은 현란한 수사학이 그려 보이는 미래상에 곧잘 현혹되게 한다. 또한 소속 체제에 대한 불만은 다른 체제의 과대선전에 쉽게 현혹되게 한다. 그 극적인 사례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다.
1981년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이 건국 이래 최대의 좌절과 손실이며 내란”이라고 자기비판을 했다. 그러나 그 이전 1970년대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자연발생적인 혁명”이라며 극구 찬양하는 언설이 서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거짓 홍보에 넘어가 민망한 행태를 보인 과똑똑이의 명단에는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나 철학자의 이름도 다수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중국판 사하프’의 선전과 홍보에 무비판적으로 세뇌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현장경험을 통해 중국의 실상을 알린 저서는 거의 묵살되다시피 했다.
▼‘거짓 홍보’ 실체 드러나기 마련 ▼
지금 세계 도처의 정치 후진국에서는 저마다의 사하프가 현실과 유리된 자기선전과 거짓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 국민을 사하프로 만들어 똑같은 소리를 복창하게 하고 있는 사회도 많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는 사하프가 충직한 수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허위사실을 유포해 자국민과 세계를 현혹시킨 어릿광대일 뿐이다. TV앞의 광대놀음이 바보상자 중독자를 현혹해 일시적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과 동떨어진 광대놀음은 조만간 실체가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거짓과 강변으로 국민을 현혹시켜온 크고 작은 사하프에 식상해 있다. ‘역사의 쓰레기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