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한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제 자신이 어느 날 갑자기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게 됐지요.”
경기 부천시 오정구 고강1동에 사는 1급 지체장애인 진희정씨(33·여)는 태어난 이듬해 뇌성마비를 앓아 손과 발을 전혀 쓰지 못한다. 그래서 전화 버튼도 혀로 누른다. 장애인 친구들과 주고받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마찬가지로 보낸다.
혼자 힘으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 학교 문턱은 가 보지도 못한 진씨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1984년.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바깥세상과 등을 지고 방안에서만 누워 살아간다면 정신도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사회복지단체에 도움을 요청해 대학생 자원봉사자로부터 교육을 받아 두 달여 만에 한글을 깨우쳤다.
이후 TV 등에서 방영하는 교육방송 등을 보며 공부를 시작해 87년 초등학교 검정시험을 통과했다. 2001년에는 중학교 검정시험에 합격했고 최근 치른 고등학교 검정시험도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씨는 2001년부터 부천지역에 살고 있는 17∼40세의 남녀 장애인 15명으로 구성된 ‘스바냐 선교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회원들에게 연결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줬으나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는 지난해 6월 교회 목사인 아버지 진상옥씨(63)를 졸라 자신이 사는 집 지하에 공부방을 꾸몄다. 회원들은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진씨의 집 공부방에서 초중고교 과정으로 나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가톨릭대 자원봉사동아리 등에서 활동하는 100여명의 대학생이 돌아가며 교육을 맡고 있으며 점심은 어머니 전복수씨(59)와 이 동네 주부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한다.
부천에 있는 아남전자 직원들이 매주 승용차를 몰고와 회원들을 집에서 공부방까지 데려다 주고 있다.
그는 회원들 사이에서 ‘호랑이 회장’으로 통한다. 수업을 빼먹는 회원은 전화로 호되게 꾸짖고 자원봉사자들도 경우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주저 없이 지적하기 때문.
회원들이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진씨가 이 지역 사회복지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해 매월 한차례 전국의 바다와 산 등을 둘러보는 야유회도 연다. 가끔 연극도 보고 호프집과 노래방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진씨는 “당당하게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한 뒤 장애인이 장애인을 가르치는 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황금천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