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 되면 부산 기장읍의 대변항에서는 봄멸치 잡이의 절정기를 맞으며 멸치축제가 열린다. 작고 아늑한 대변항 바로 위에는 2천2개의 토우가 뒷산 가득히 들어찬 토암도자기공원이 있다. 해학적인 모습에 보기만 해도 즐거운 토우 속에는 토우를 만든 토암 서타원 선생의 의미 있는 인생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토암 선생이 마련한 숲속의 문화쉼터와 함께 멸치축제가 열리는 대변항으로 떠나본다.》
‘아버지 난 왜 귀가 없어요?’ 키 30cm 가량, 몸무게는 잘해야 2~3kg 정도? 난쟁이 키에 몸집도 작은 데다 귀까지 없는 토우들은 자신들을 ‘낳은’ 아버지에게 왜 귀가 없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아버지의 대답은 한결같다.
‘이 세상 부질없는 소리에 휘둘리지 말라고 안 만들었단다. 무심무욕으로 무소의 뿔처럼 굳건히 홀로 가라고… 그렇게 우리 모두 자연으로 회귀하라고….’
펑퍼짐한 얼굴형에 찢어진 눈, 납작한 코… 결코 미남 미녀의 얼굴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노래하듯 입을 벌리고 방긋방긋 웃는 토우들. 볼수록 귀엽고 정감 어린 그 모습에 보는 이의 얼굴에도 웃음이 절로 머금어진다.
멸치로 유명한 부산의 대변항. 그 아늑한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토암도자기공원. 이름은 도자기 공원이지만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들이 대부분이다. 귀가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언제나 방긋방긋 웃는 토우들은 바로 이곳의 주인인 도예가 토암 서타원 선생이 분신처럼 여기는 ‘귀한 자식들’이다.
토암도자기공원은 초입부터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삐죽한 나뭇가지마다 도자기로 만든 풍경이 매달려 있는 모양새도 그렇거니와 옹기종기 모여 한껏 입을 벌린 채 노래를 하는 토우 합창단의 모습도 특이하다. 마치 지휘자의 손놀림에 맞춰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환영가를 불러주는 듯한 형상이다.
흙으로 빚은 종 모양의 이곳 풍경은 소리도 남다르다. 그동안 흔히 보던 쇠로 만든 풍경이 가늘고 고운 소프라노 소리에 비유된다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나오는 도자기 풍경의 소리는 뭐랄까,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굵직한 바리톤 음색인 듯싶다.
▼숲속의 작은 문화공간 속에 숨겨진 비밀은?▼
“대개 바닷가에 가면 바다 좀 보고 회나 한 접시 먹고 가는 거지, 마땅히 할 게 없잖아요. 우리 집에 오면 흙도 만질 수 있고, 도자기도 구울 수 있고, 야외 전시장에서 그림도 감상할 수 있고, 2천2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토우도 볼 수 있고… 우리 집의 목적은 산속의 작은 문화공간으로서 편안한 쉼터 역할을 하자는 거죠.”
하긴 요즘은 흙을 만지는 것은 고사하고 밟아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곳에 오면 풋풋한 흙냄새에 원없이 묻힐 수 있고 비정기적이지만 한달에 한번씩 숲속의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4월19일에는 테너 엄정행씨의 무대가 펼쳐질 예정.
오래된 통나무 울타리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음악회 공간도 이색적이다. 투박하고 낡은 마룻바닥 무대에 잔디마당으로 이루어진 객석… 자연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노란 불빛의 가로등이 은은하게 비치는 가운데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앉아 감상하는 산속의 음악회는 그야말로 ‘분위기가 끝내줘~요’ 소리가 절로 나올 법하다.
아울러 이곳은 30년간 흙을 주무르며 살아온 서타원 선생의 지도를 받아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도자기를 빚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 정도. 방문객이 원할 때 언제든지 만들어볼 수 있지만 ‘수강생’이 다섯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만드는 비용은 1인당 1만원이고 도자기를 빚은 후 20일 후에(도자기가 어느 정도 모아져야 가마에 불을 지필 수 있기 때문) 자신의 작품을 가져갈 수 있다(지역이 멀어 도자기를 가지러 오기 힘들 경우 택배로 신청하면 된다). 주로 방학 때나 연휴 때 가족 단위로 오거나 인근에 있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와서 체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곳의 백미는 2천2개에 달하는 토우들이다. 2002 월드컵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토우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토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 특히 가까운 해운대 특급호텔에 투숙하고 있는 외국 관광객들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맨 처음에 폴란드전에서 이겼잖아요. 그 이튿날 폴란드 축구 임원진들이 이곳에 왔는데 그들이 하는 말이, 대한민국은 붉은악마 응원단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런 산속에서까지 (토우들이)입을 벌리고 응원을 하니까 자기들이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토암 선생의 말을 듣고보니 그도 그럴 법 했다. 공원 건물 뒤편에 있는 뒷산은 온통 토우들로 ‘도배’되어 있는 가운데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것 같은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한다. 처음엔 2천2개라는 숫자의 규모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잘 안 잡혔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순간 토우처럼 입이 딱 벌어지게 된다.
토우들은 저마다 모습도 특이하다. 수염 난 할아버지, 꼬부랑 할머니, 동그랗게 눈 뜬 어린아이, 아기 업은 아낙네, 가지런히 머리를 땋은 처녀(머리 위에 누군가가 자그마한 도자기를 올려놓아 마치 물동이를 인 모습이다), 게슴츠레한 눈의 댕기머리 총각…. 그들 무리중엔 태극전사들도 있고, 특유의 땡땡이 무늬 넥타이를 맨 히딩크 감독도 있고, 정몽준 의원, 노무현 대통령도 끼어있다. 그러고보니 마치 숨은 그림 찾기 식으로 인물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귀 없고 머리 뚫린 토우에게 뭔가를 배우는 여행▼
이렇듯 2천2개의 토우들은 제각각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이다(토우의 얼굴색이 다른 것은 불의 온도 차이 때문이라고). 토암 선생에 의하면 대략 7백~8백개까지는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만났던 인연들을 떠올리며 작품에 반영했지만 그후로는 한계에 부딪혀 도저히 새로운 얼굴이 탄생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에도 가보고 초중고등학교에도 가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녔다고. 뿐만 아니라 길을 다닐 때도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암 선생의 토우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해맑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웃음을 선사한다. 아마 화가 웬만큼 난 사람도 이곳 토우들을 보면 금세 얼굴이 풀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다.
이곳 토우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 우선 귀가 없고, 머리 꼭대기가 뻥 뚫린 채 열려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 토암 선생을 통해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새삼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왜 귀가 없느냐, 내가 암에 걸리고 나니 병은 한가지인데 약은 천가지라고, 주변에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많은 거야. 너무 많은 처방법에 시달리다보니 이건 좋은 소리가 아니라 탁한 소리, 허튼 소리로 들리면서 오히려 치료에 혼돈이 오는 거야. 그러면서 아 이젠 탁한 소릴 듣지 않으리라 싶어 귀 없는 토우를 만든 거지. 요즘 세상에는 좋은 소리보단 허튼 소리가 더 많아.”
머리가 뻥 뚫린 이유는 과거의 집착과 욕심을 버리자는 생각에서다.
“사람이 아는 게 많으면 자꾸 생각을 하게 되고 계산을 하게 되지. 그러다보니 암과 싸울 수 있는 여력도 없어지고 힘들다 싶어 바보처럼 조금은 멍청하게 살고 싶었어. 가슴은 비울 수 없어도 머리는 좀 비우고 살자는 거지.
또 토우들이 다들 합창을 하고 있는 이유? 고통스럽고 힘든 투병생활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싶어서지. 암환자 보면 대개 쭈그러진 얼굴상을 하고 있잖아. 노래한다는 자체는 즐거움이니까….”
토우를 만든 것도 암이 계기가 되었다. 암수술을 받고 난 후 토암 선생은 몸무게가 무려 25kg이나 빠지면서 몸을 지탱할 힘조차 없었다. 그래도 ‘흙쟁이는 흙을 만져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물레에 앉았다. 그러나 기력이 달리니 흙더미를 올려 물레질을 하다보면 자꾸만 찌그러졌다. 그렇게 올리려다 찌그러져 나온 것이 바로 토우다.
그러나 토암 선생은 이제 더 이상 토우를 만들지 않는다. 차가운 성질을 지닌 흙을 만지면 안된다는 의사의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흙쟁이에게 흙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지만 이미 집착도 욕심도 다 벗어 던진 토암 선생은 이제 2천2명의 자식만으로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차가운 흙을 놓은 대신 이젠 따뜻한 불을 잡았다. 30년간 도공 생활을 해오면서 그 어느 누구보다 많은 불을 지켜보았기에 불그림을 통해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불이라는 게 참 묘해. 도자기를 구울 때 보면 처음에는 모닥불에서 시작해 조금 지나 중간불이 되면 시커멓게 연기가 나면서 요동을 치거든. 그 흐름이 엄청 우렁차단 말이야. 그게 인생에 있어선 30~40대라고 볼 수 있지. 그러다 1천도가 넘으면서 고열이 되면 불이 조용해져. 그게 50대야. 그러고 1천3백도가 되면 느낌이 없어져. 그리고 나면 한줌의 재만 남는 거야. 우리 인생하고 똑같아.”
불을 통해 이렇듯 인생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은 토암 선생의 불그림 또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토암도자기공원은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물론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는 곳이다. 4월이 오면 한번쯤 이곳 기장에 와서 싱싱한 멸치회도 맛보고 토암 선생이 말하는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토암도자기공원 문의 051-721-2231
▼대변항에서 열리는 기장 멸치축제는? ▼
해마다 4월이 되면 기장읍에 위치한 대변항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나라 최대의 멸치항으로 꼽히는 이곳은 한창 물이 오른 멸치잡이 때에 맞춰 ‘기장멸치축제’를 열기 때문이다. 올해는 4월25부터 27일까지 3일간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관광객들이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멸치털이 체험. 그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멸치를 여러명이 구호에 맞춰 함께 털어내는 것으로 대변항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폴짝폴짝 튀어오르는 멸치를 잡는 멸치잡이 대회도 마련되어 있고,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멸치를 즉석에서 회무침을 하여 먹는 무료 시식회도 열린다. 멸치는 잡히면 오래 살지 못해 멸치회는 대변항에서가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기름기가 많은 봄멸치를 즉석에서 구워 먹는 것도 대변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별미라고 한다. 구울 때 기름기가 자글자글 끓어오르면서 나는 고소함이 기가 막혀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