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구의 날’이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에서 유조선의 기름 유출로 해양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사회문제화되자 당시 미 상원의원인 넬슨이 주창해 1970년 4월 22일을 ‘지구의 날’로 정해 행사를 개최한 것이 그 효시다. 우리나라도 1990년부터 민간 환경단체들의 주최로 다채로운 행사를 펼쳐오고 있는데 ‘물의 날’ ‘환경의 날’ 등과 달리 민간 차원에서 시작된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서로 다른 주장 갈등만 부를뿐 ▼
‘지구의 날’ 제정 이후 지난 33년 동안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 기업들이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주요 환경문제의 해결은 아직 요원하다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대기오염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최근 보도에서 보듯이 우리의 환경 수준은 선진국에 비하면 지극히 미흡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지구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수순을 다시 밟아야 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인류는 이미 모범답안을 내놓고 있다.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 보고서에서 제시된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래 세대를 감안한 발전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상생(相生)이란 말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기업을 포함한 개발의 주체들도 성장 위주의 개발이 아닌 환경친화적 개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조성돼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이 환경친화적 개발인지 그 수단과 방법에는 아직 미흡한 면이 적지 않다.
최근 서울외곽순환도로와 경부고속철도의 노선 변경문제, 그리고 새만금 간척사업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해당사자간에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해석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한 쪽은 경제발전이나 기술개발의 성과가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이해가 부족하고, 다른 쪽은 갯벌이나 강, 숲과 같은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데 인색하기 때문에 그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개발과 보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다. 여기에 직접 이해당사자인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입장 차이, 정부의 조정능력 미흡 등으로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특히 이들이 해당 사업에 대해 갖고 있는 지표와 평가방법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입장이 잘 반영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평가틀과 그 추진 방법을 만들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경제성, 환경성, 사회성을 고려한 ‘국가 지속가능 발전 지표’를 개발해 국가 차원의 목표에 대해 서로 공감하도록 해야 한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고려한 지속가능 발전은 결국 국가 및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맞물려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영국과 유럽대륙을 연결한 도버해협 터널공사의 경우 해양생태계 훼손과 경제개발, 그리고 국가안보 등을 둘러싸고 양국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양국의 사업 주체는 30%의 추가 비용을 들여 기술적 검토를 통해 이해당사자의 평가 잣대를 통일시켜줌으로써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합의, 터널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그 결과 엄청난 물류비용의 절감 등 경제적 효과를 보게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속가능발전 지표’ 개발해야 ▼
이제 국책사업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평가 잣대를 만들어 나가자.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고 환경적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명료하게 공유하도록 하자. 서로의 시각차를 해소할 수 있는 공통의 평가 잣대를 만들어 가면 개발과 환경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박종식 삼성지구환경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