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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03]제주도 보건硏 '벤처 김선달' 프로젝트

입력 | 2003-04-22 17:39:00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 대기보전과 직원들이 한라산 천아오름 계곡의 채취장에서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언 현성수 연구원, 김영주 과장. 한라산=이헌진기자


“이거, 사기(詐欺) 아냐?”

2001년 5월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이 한라산 ‘공기’를 캔에 담아 판다고 밝혔을 때 발표장에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누구도 값을 치르지 않는 ‘자유재(自由財)’의 대명사격인 ‘공기’를 누가 사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약 2년이 흐른 지금 이 엉뚱한 사업은 ‘황금알’을 꿈꿀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CJ 내추럴 에어’라는 이름으로 지난달에만 7만 캔이 팔렸다. 황사(黃砂)가 잦은 이달 들어서는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누가 4000원이나 주고 기껏해야 3∼5분 숨쉴 분량의 공기를 사겠느냐는 의구심은 이제 사라졌다.

17일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 내 천아오름 계곡의 700m 고지에서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 대기보전과 직원들을 만났다. 김영주 과장을 비롯해 직원 6명이 지난해 10월부터 이곳에서 공기를 채취해 CJ에 팔고 있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다.

“공기산업이 뜬다던데.”

2001년 4월 보건환경연구원 내에서는 이런 의견이 나왔다. 천아오름 계곡은 아황산가스와 이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은 무공해 공기로 꽉 차 있다. 어떤 검사를 해봐도 하와이나 스위스 알프스산맥 등 세계적 청정지역과 견줄 정도로 공기가 깨끗하다. 연구원들은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다.

“3개월 만에 공기를 10배 압축해 캔에 담았죠.”

같은 해 7월 이들은 시제품을 갖고 서울로 올라온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서울의 교통경찰과 지하상가 상인에게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다만 ‘심심한 맛’을 보완하기 위한 ‘향(香)’이 필요했다.

김 과장은 “제주도만의 향, 산림 속을 거니는 분위기의 향을 찾기 위해 미역 향, 밀감 향, 유채꽃 향 등 많은 향을 가미해 봤다”고 말했다.

고심 속에 택한 게 구상나무. 세계적으로 제주도와 지리산, 덕유산에만 있고 한라산 정상 부근 800만평 규모에서 가장 많이 자생하는 이 나무에는 삼림욕의 주 성분인 향균(抗菌)성 물질 ‘피톤치드’가 소나무보다 3∼4배나 많다.

“아마 구상나무 향을 추출한 것은 우리뿐일 거예요. 게다가 지난해 3월 입과 코를 동시에 대고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만든 마우스 캡으로 특허도 받았죠.”

또 전국에 이 상품을 팔기 위해 지난해 6월 CJ와 계약해 민관 합작사업으로 탈바꿈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이후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어요. 유독가스 속에서도 이것만 가지면 숨을 2, 3분 정도는 더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부터죠.”

환자나 수험생들, 공기가 탁한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았지만 엉겁결에 구급 장비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최근 제주도는 유독가스 속에 이 캔이 구급 장비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귀포시 공무원을 상대로 진짜 최루가스를 써서 실험까지 할 정도다.

김 과장은 “3분 정도는 방독면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며 “올 7월에는 150배로 공기를 압축하고 용기의 크기는 훨씬 줄인 신제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한라산=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