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전 4분22초, 스코어는 2-2.
미네소타 와일드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96년과 2001년 두 번씩이나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정상에 올라 스탠리컵을 차지한 강적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16강 플레이오프(7전4선승제). 전날까지 전적은 2승3패로 한번만 더 지면 탈락이었다.
위기의 미네소타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간판스타인 마리안 개보릭이 아니었다. 까만 머리, 황색 피부에 1m80, 86㎏으로 NHL 선수치곤 작은 체구의 동양인 선수 박용수(27·미국명 리처드 박).
그가 손목을 이용해 날린 스냅슛이 NHL 최고의 골리(골키퍼)로 평가받는 패트릭 로이의 장갑 밑을 빠져나가 네트를 흔들자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의 엑셀에너지센터에 모인 1만9350여 홈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3-2로 승리를 결정짓는 골든골. 미네소타 선수들은 모두 박용수에게 몰려들어 결승골을 축하했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팬들은 기립박수로 오랫동안 기쁨을 표시했다.
22일의 플레이오프 6차전은 박용수를 위해 준비된 경기. 그는 0-0인 3피리어드 1분45초에 선제골을 넣으며 대활약을 예고했다. 이 골은 플레이오프 6경기 출전 만에 처음 넣은 것. 그동안의 활약은 1차전에서 기록한 어시스트 한 개가 전부였다.
미네소타는 10여분 뒤 골게터 개보릭의 추가골로 승리를 굳히는 듯 했으나 경기 막판 콜로라도에 연속 2골을 내줘 연장전에 들어갔다.
2000년 팀창단 후 불과 3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돌풍의 팀’ 미네소타는 2골을 몰아친 박용수의 ‘원맨쇼’로 6차전을 잡고 3승3패를 기록, 23일 덴버에서 원정경기로 최종 7차전을 치른다.
박용수는 90년대 초반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뛰며 두 차례나 스탠리컵 챔피언 반지를 낀 수비수 백지선(미국명 짐 백)에 이어 한국출신으론 두 번째로 NHL 무대를 밟은 선수. 79년 가족과 함께 도미해 84년 아이스하키에 입문한 박용수는 92년부터 94년까지 캐나다주 온타리오 주니어리그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다 94년 피츠버그에 입단했다.
그는 2001년 신생팀 미네소타로 옮기면서 기량을 꽃피웠다. 2년간 150만달러에 계약한 뒤 2001∼2002시즌 62경기에서 10골 15어시스트를 기록했고 올해 정규리그 81경기에서 14골 10어시스트(팀내 포인트랭킹 10위)를 올리며 제 몫을 해냈다. 지난해 4월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한국출신 선수로 처음 미국국가대표팀에 포함돼 예선리그 6경기에서 3골 3어시스트로 팀내 최다포인트를 기록했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