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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하!그렇군요]사스랑 우리나라 수출이 왜 상관있나요?

입력 | 2003-04-22 17:53:00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 같다고 야단입니다. 아직 공식 환자가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도대체 사스와 경제성장률 하락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홍콩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이 늘어나면 왜 한국에서 부모님이 청소년에게 주는 용돈이 줄어들까요?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비경제적인 사건들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풀어 봅니다.》

일본 속담에 “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답:바람이 분다→먼지가 인다→시각장애인이 많이 생긴다→시각장애인용 지팡이가 많이 필요해진다→지팡이 만드는 데 쓰이는 고양이 가죽도 더 필요하다→고양이 수가 줄어든다→쥐가 많아진다→쥐는 통에 구멍을 많이 낸다→통이 잘 팔린다→통 장수가 돈을 번다.

좀 과장도 있지만 경제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따지고 보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잘 말해 주는 속담입니다.

요즘 매일 신문에 나오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무서운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감염자가 없지만 이 병은 우리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줍니다. 일본 속담을 흉내 내어 말해 보면 이렇습니다.

‘마스크 쓴 홍콩 사람이 늘어나면 내 친구 한국이의 용돈이 줄어든다.’

왜 그런지 알아맞혀 보실래요?

여러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 ‘사스로 항공사 울상’이라는 제목을 단 신문기사일 겁니다. 맞습니다. 사스 같은 전염병이 돌면 중국 홍콩 등 사스가 돌고 있는 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람이 적어집니다. 해외관광, 어학연수처럼 급하지 않은 일은 뒤로 미룰 테니까요.

그러면 관광객을 홍콩으로 인솔해 가는 관광업자나 중국으로 어학연수 가려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학원은 돈벌이가 나빠집니다. 비행기 손님이 줄어들기 때문에 대한항공 같은 항공사들도 장사가 잘 안 됩니다. 3월 한 달 동안 해외여행객은 지난해 3월보다 8.5%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베이징은 19%, 홍콩과 싱가포르는 27∼28%나 줄었습니다. 손님이 70∼80% 확 줄어든다면 비행기를 아예 안 띄워도 되니까 비행기 기름 값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얄궂게도 그 정도는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띄울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는 법. 사스 덕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주공항에서 시내로 손님을 태워 주는 택시운전사나 경주 불국사에서 삼각대를 세워 놓고 관광객을 맞는 사진사 아저씨들이 그렇습니다. 동남아로 신혼여행을 가려고 했던 신혼부부들이 제주나 경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황금연휴를 맞은 일본 관광객이 중국이나 홍콩 대신 한국을 많이 찾아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 여행업계가 사스로 입는 타격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코를 풀면 모두들 놀라 달아난다는 홍콩에도 사스 때문에 볕이 드는 사업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외출을 꺼리다 보니 시내 레스토랑은 텅텅 비어 있지만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은 때 아닌 호황을 맞고 있답니다.

홍콩의 레스토랑과 라면회사도 그렇지만 대한항공과 제주도 택시운전사의 관계는 한 쪽이 잃으면 다른 쪽이 돈을 버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한국이 손해만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 홍콩 싱가포르 등지에 수출을 많이 합니다. 작년 수출품 가운데 4분의 1은 세 나라 국민이 사갔습니다. 그런데 사스 때문에 경제가 나빠지면 그 나라 국민은 수입품을 덜 쓰기 마련입니다. 자연히 우리의 수출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사스가 앞으로 두 달 안에 퇴치되지 않으면 항공사 여행사는 물론 레스토랑 백화점 같은 내수산업(수출산업의 반대말)의 경기가 나빠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이 차례로 불황(그 나라 경제 전체가 나빠지는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모건스탠리라는 미국 증권사는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 지역의 올해 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한 달 전의 전망치 5.1%보다 낮은 4.5%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GDP 증가율 전망치도 사스, 이라크전쟁 등 불리한 해외 환경을 고려해 4%에서 3.5%로 낮췄습니다. 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 올해 1년 동안 새로 만들어지는 재산은 사스가 없었다면 620조2364억원이 될 텐데, 사스 때문에 그보다 2조9819억원 줄어든 617조2545억원에 그치게 됩니다(물가는 감안하지 않음).

이제 아셨죠? 마스크 쓴 홍콩 사람이 늘어나면 왜 내 친구 한국이의 용돈이 줄어드는지.

정답:마스크 쓴 홍콩 사람이 늘어난다→사스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홍콩 레스토랑이 장사가 안 된다→레스토랑 식탁이 닳는 속도가 느려진다→레스토랑 근처 가구 판매점에 수입 식탁 재고가 쌓인다→한국 가구 제조업체의 수출이 줄어든다→가구회사에 다니는 내 친구 한국이 아빠의 월급이 줄어든다→내 친구 한국이의 용돈이 줄어든다.

▼경제성장률이란? ▼

경제성장률이란? 한 나라 국민이 일정기간(보통 1년)동안 이뤄낸 경제성장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전년도에 비해 실질 국민총생산(한 나라에 거주하는 사람이 1년동안 생산한 모든 재화나 용역을 시장 가격으로 평가한 것)이 어느 정도 늘어났는가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해당 연도와 전년도의 실질 국민총생산 차이를 전년도 실질 국민총생산으로 나눈 다음 100을 곱하면 된다. 실질적인 금액의 증감을 나타내기 때문에 실질성장률이라고도 한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에피소드 ▼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시절,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선 노동절을 맞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있었다고 합니다. 탱크와 미사일 및 각종 첨단무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아래위 모두 검은색 옷을 입은 10명이 본부석 앞을 지나갔습니다.

고르바초프가 “저들은 특수훈련을 받은 스파이인 모양이지?”라고 묻자 옆에 있던 KGB(소련 중앙정보부) 책임자가 “저들은 경제학자입니다. 그들을 미국에 풀어놓았을 때의 가공할 혼란을 상상해 보십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실제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꾸며낸 얘기입니다. 경제학자들이 현실 경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논쟁을 자주 해 많은 사람들을 골치 아프게 만드는 것을 풍자한 것이지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경제학자들에게 100개의 질문을 던지면 3000개의 답변이 나올 것”이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영국 소설가 버나드 쇼도 “모든 경제학자들을 드러눕혀 쭉 이어본다면 그들은 결론이라는 곳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지요.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외팔이 경제학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문제에 대해 한목소리로 뚜렷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한편으로는(on the one hand) 이렇고, 다른 한편으로는(on the other hand) 저렇다’라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앵무새도 경제학자와 15분만 있으면 충분히 경제학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유행합니다. 경제학자들이 입만 떼면 수요와 공급을 말하기 때문에 앵무새도 금세 경제학자로 손색없이 경제학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아무리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은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정신적 노예일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