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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 한국軍 선발대 캠프 르포]"멀쩡한 건물 거의 없어"

입력 | 2003-04-23 18:09:00


쿠웨이트 북부 이라크 접경의 다국적군 캠프 코만도(commando). 미군을 주축으로 영국군, 쿠웨이트 수비대 등이 주둔하고 있는 후방 캠프다.

22일 이곳에서 미국의 이라크전쟁 지원을 위해 5일 전에 도착한 한국군 선발대를 만날 수 있었다.

캠프 북쪽 식당에서 기자가 만난 한국군 서희(건설공병) 제마(의료지원)부대 선발대원들은 이제 막 이라크 정찰에서 돌아와 스푼과 포크를 들려던 참이었다.

식단은 닭다리 튀김에 감자 파슬리 샐러드 콜라 등 완전 미국식. 캠프에 도착한 지 5일째여서 뱃속은 김치에 된장국 생각이 간절하지만 이틀간의 긴박한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허기가 곧 반찬’이다.

선발대가 다녀온 곳은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 바그다드 100㎞ 남쪽까지 치고 올라간 미군이 이라크군의 게릴라전에 허를 찔린 대표적인 후방 격전지다. 제시카 린치 일병 등 미군이 길을 잘못 들어 대거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서희부대 소속 이우식 소령은 그곳의 피해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온통 손대야 할 곳이었다”고 답했다. 이번 전쟁까지 20여년에 걸친 전란으로 성한 건물을 찾기 어려운데다 이라크인들의 복구 의지마저 사라졌다는 게 이 소령의 평가.

현지 의료체계도 완전히 망가지는 바람에 미 군의관들 중엔 “전쟁이 끝나 우리마저 철수하면 누가 이라크인들을 돌볼 것인가”라고 자책하는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군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공보를 맡은 임정완 대위는 “큼직한 돌멩이가 곳곳에 튀어나온 황무지에서 맨발로 축구공을 차는 이라크 아이들이 너무나 기억에 남는다”며 “월드컵 4강 덕택에 한국축구를 다 알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대원이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장은 멋들어지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거들었다.

대원들이 식사하는 동안 최상급자인 정광춘 연락관(대령)과 박병기 중령 등은 미 1해병대 공병단 큐빅 소장과 유창한 영어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정 대령은 국방부 대미(對美) 정책과와 한미연합사 등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 진상조사까지 담당했던 미군 협력분야의 베테랑.

반바지 차림으로 막 조깅을 마친 큐빅 소장은 “수십년 동안 군복을 한국 재단사에게 맞춰 입었다”고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은근히 한국인들의 ‘손 기술’을 치켜세운다.

22일 미군이 주둔해 있는 쿠웨이트 북부의 캠프 코만도에서 한국군 서희 제마부대 대원들이 이라크 나시리야 지역에 대한 사전 정찰활동 결과를 토대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작전회의를 하고 있다. -쿠웨이트=박영대특파원

이달 30일 쿠웨이트에 도착할 한국군 본대는 내달 8일부터 1, 2진으로 나눠 나시리야 외곽으로 주둔지를 옮기게 된다. 나시리야 남쪽을 흐르는 유프라테스강의 교량을 보수하고 학교 등을 신축하는 임무가 맡겨질 전망. 정 대령은 “나시리야 경찰이 복귀하고 공공기관도 업무를 재개했다”며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미군과 한국군에 호의적인 것 같아 안심”이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대원들과 한국군 23번 분대텐트로 옮겨가는 동안 “안녕하세요”라고 서투르게 말을 건네는 미군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독일이 통일된 뒤 한국어는 독일어를 제치고 본토의 미군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어로 떠올랐다는 것.

연락장교들을 제외한 선발대는 부사관 2명을 포함해 모두 20명. 이 중 3명만이 미혼자다. 선발대는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아침저녁 점호를 없애고 대신 작전회의 시간을 늘렸다. 계급이 2, 3단계나 차이가 나는데도 대원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만 그리운 가족들과 떨어져 있어 마음이 편치 않은 눈치다. 아직 이라크 내 주둔지로 옮기지 않은 탓에 서신 교환도 마땅치 않다. 한 대원은 ‘답장이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겉봉에 적은 뒤에야 편지를 부칠 수 있었다.

한편 이날 오전 외무부 담당자들이 쿠웨이트 국방부와 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위한 실무협상을 타결지었다. 한국군 파병부대가 쿠웨이트를 통해 입국하고 나중에 철수하기 때문에 쿠웨이트측과 협상을 벌인 것.

그러나 한국군의 ‘작전’ 무대가 이라크 남부인 만큼 협정의 국제법적 효력이 모호해질 수 있다. 과거 해외파병은 대부분 유엔평화유지군(PKF)의 일환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 같은 걸림돌은 없었다. 쿠웨이트 주재 최조영(崔朝永) 대사는 “이라크를 사실상 관할하고 있는 미 중부군사령부와 추가 협상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 코만도(쿠웨이트)=박래정특파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