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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VIP의 이삿짐

입력 | 2003-04-24 17:21:00

17일 오전 이사전문업체 KTMS 직원이 한 외국인 가족이 한국에서 구입한 도자기를 깨지지 않도록 포장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대개 다수의 한국 고가구, 예술품들을 구입해 본국에 가지고 돌아간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지난해 말 국내의 해외이사 전문 업체들은 창사 이래 최대의 비수기를 맞았다. 업체마다 정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평소보다 매출이 반 이상 줄어든 곳도 있다.

국내외 이사, 통관, 운송, 보관 전문 물류회사인 ‘KTMS’(koreatransport.com)의 오현수 사장(여·42)은 “해외 기업의 경우 북핵문제가 불거지자 그 추이를 지켜보느라 직원들을 한국 내에 머무르게 했기 때문이고, 정부 부처나 기관, 국내 대기업은 대선으로 인사이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이사 업계로서는 1997년 외환 위기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한국을 떠나는 외국 기업 직원, 해외 지사나 공관을 철수하고 귀국하는 한국인들이 많아 끊임없이 수요가 발생했다.

짐을 보내기 약 50일 전부터 수속이 시작되는 해외 이사의 특성상 이사 업체가 특정 기업 핵심 임원들의 인사(人事)를 해당 기업 종사자들보다 먼저 알게 되기도 한다. 이사 의뢰를 접수한 지 한 달 이상 지나서야 언론을 통해 “○○사의 ×× 사장이 부임할 예정”이라고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대단한 정보를 갖고 있구나”라고 깨닫는다. 글로벌기업의 한국 최고경영자(CEO)급 의 이사를 맡는 업체들에는 정치인, 기업의 CEO 등 ‘VIP’들이 이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이사 과정에서 업체 종사자들은 크고 작은 로비의 흔적, 권력의 실체 등을 느끼게 된다.

3M, 바스프, 텍사스인스트루먼트, 화이자, 듀퐁, 쉐링 등 글로벌 기업 임원과 유엔기구 및 영국외무성 직원 등의 한국 내외 이사를 도맡아온 ‘KTMS’ 직원들로부터 국내외 ‘VIP’들의 이사 백태를 들었다. 8∼19년 경력의 이들은 “단 며칠 동안에 집주인의 성향, 라이프스타일, 사회적 영향력 등을 파악할 수 있으니 ‘이사가 만사(萬事)’”라고 주장했다.

● 외국인 VIP들의 이삿짐

17일 오전 9시 반.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한 대사관 직원 가족이 이삿짐을 싸는 날이었다. 어린 두 아들과 부부가 함께 사는 가족의 짐은 단출한 편이었다. 계단식으로 디자인된 동양풍 목조 가구, ‘스텝 체스트’만이 포장하기 까다로울 듯했다.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삿짐 속에는 이처럼 대개 스텝 체스트와 메디신 체스트(서랍이 많은 한약방용 가구)가 들어 있다. 서양인들은 한국에 체류하면서 부피가 큰 고가구나 도자기, 미술품을 주로 구입한다. 따라서 입국할 때의 짐과 출국할 때 짐의 부피 차가 2배 이상 나는 경우도 있다. 95∼96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던 조지 윌리엄스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1984년 입국해 1999년 미국 댈러스로 돌아갈 때까지 서울에서 7번이나 집을 옮기면서 짐이 크게 늘었다. 입국할 때 나무 박스 한 개(1000파운드 분량)였던 짐은 컨테이너 두 대 분량(2만 파운드)으로 약 20배 늘어났다.

인사 이동으로 해외 이사를 자주 경험했던 외국인들은 집에 있는 물건 목록을 미리 꼼꼼히 작성해 두기도 한다. 물건 목록은 이삿짐의 분실, 파손 사항을 점검하기 위해 이삿짐 업체가 요구하는 서류 가운데 하나.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의 존 보나치 전 대표는 가장 꼼꼼한 고객이었다. 보나치 대표 부부는 귀중품은 물론, 포크와 나이프에 이르기까지 물건의 이름과 가격을 컴퓨터에 A4지 5장 분량으로 빼곡히 저장해 두고 있었다.

함께 입국했던 부인을 버리고 이 곳에서 한국인 여성과 재혼하는 외국인 임원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본국으로 먼저 돌아가는 전 부인의 이삿짐을 의뢰받기도 한다.

“사정을 잘 모르고 갔다가 집안 분위기만 보고 감을 잡죠. 저희도 덩달아 몸가짐을 조심하게 돼요.” (KTMS 김진표 차장)

살림살이를 놓고 치사한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툼은 주로 “이 가구는 내 돈으로 산 거다. 가져가겠다.”(부인)“무슨 소리냐, 내가 사주지 않았느냐”(남편)류의 실랑이에서 비롯된다. 싸움의 승리자는 대개 여성이다.

사회적으로 ‘동급’의 한국인 가정의 짐에는 고가(高價) 가구, 고급 의류 등 사치품이 많다. 그러나 외국인들의 경우 고(古)가구나 그림 등 예술품이 많다. 1997∼8년 쌍용증권(현 굿모닝신한증권), 쟈딘플레밍증권 이사로 재직하던 중 한국의 경제위기를 예측해 주목을 받았던 애널리스트 스티븐 마빈이 그랬다. 1999년 일본으로 향한 그의 이삿짐에는 벽에 다 걸지 못하고 쌓아두기도 한 그림이 100여점이나 됐다.

● 대통령 아들의 ‘끗발’

199○년 7월, 대통령의 아들 가족이 이사를 했다. 같은 구(區)내에서 이동하는 것이었던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KTMS’ 직원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했다.

이사는 열흘 가까이 걸렸다. 비슷한 평수 ‘일반 이사’의 두 배나 되는 기간이다.

하지만 이사 과정 자체는 수월했다.

이사보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챙기느라 더 바빴던 안주인은 단지 ‘길시(吉時)’와 ‘길일(吉日)’을 잘 지켜달라고만 주문했다.

“오전 11시에 침대 머리판이 먼저 안방에 도착해야 해요.” “오늘은 손 있는 날이니 이삿짐을 나르지 마세요.”

보통 이사업체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골목길 주차다. 좁은 길목에 대형 트럭을 주차하고 짐을 나르면 주민들은 당장 “차 빼라” “겁이 나서 아이들이 나가지도 못한다”고 따지고 업체 직원들은 “곧 끝난다” “조금만 참아달라”고 달래는 공방이 반복되곤 한다.

이번 이사는 달랐다. 좁은 골목길에 대형 트럭이 들어서는 순간 길이 열렸다. 관할 파출소장과 부하 직원들이 나서 “누가 골목에 차를 세웠느냐”며 오히려 주민들을 나무랐다.

7월 삼복 더위에 못 이겨 유니폼 상의를 벗어젖힌 파출소장은 러닝셔츠 차림으로 열심히 짐을 날랐다. 대통령 아들의 측근들까지 나서 일사불란하게 작업이 진행됐다.

음악을 전공하는 자녀들의 악기, 한때 같은 집에 살다 이사를 간 부모의 남은 짐까지 더해 이사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지상층의 세간들은 사치스럽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지하층에는 또 다른 종류의 ‘이삿짐’들이 쌓여 있었다. 포장도 풀지 않은 선물 상자들이었다.

말린 미역, 멸치, 어리굴젓 등 ‘소박한’ 선물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선물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안주인조차 내용물이 무엇인지,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사 기간 내내 드나드는 손님들의 손에도 홍어, 굴비 등 고급 해산물을 담은 흰색 스티로폼 박스 또는 종이 가방이 들려 있었다.

‘명가(名家)’의 며느리답게 안주인의 인심은 후했다. “더운 날에 수고했다”며 직원들에게 목욕비를 쥐어주었고 멸치, 김, 미역 등 지하층에 있던 지역 특산물들을 나눠주기도 했다. 직원들은 “또 다른 전 대통령 아들, 도지사 딸 등 권력자의 자제들이 이사할 때도 ‘일사불란한 짐 나르기’, 관할 공무원들의 편의 제공 등이 뒤따랐다”고 말했다.

● 에피소드

“한 외국계 금융 회사에서 일하는 임원이 싱가포르 지사로 발령이 나서 이삿짐을 싸러 갔어요. 안방 장식장 속에 하얀 종이가 하나 붙어 있기에 무심코 봤죠. 각서였어요.”(KTMS 박영규 과장)

‘나 ○○○는 유흥업소 출입을 자제하겠으며 늦어도 ○시까지는 귀가해 아내와 자식을 위해…. 한 번만 더 그럴 시에는….(남편)’

애완동물은 가장 까다로운 ‘이삿짐’이다.

인천공항이 생기기 전, 한 다국적 음료회사 사장의 고양이가 김포공항에서 오전 11시경 검역을 마친 뒤 오후 7시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사장은 “이미 손을 써 두었다”며 “한여름인데 우리 애(고양이)가 얼마나 덥겠느냐. 공항 근처 에어컨이 잘 설치된 여관에 두었다가 비행기 타기 직전에 데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고양이는 에어컨 바람 속에서 낮잠을 잔 뒤 제시간에 비행기에 올랐다.

이사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신없고 당황스러운 경험이다. 이사업체 직원들이 “일을 오래 할수록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잘 알려진 한 다국적 회사의 사장 부인이 ‘주부 치매’성 사고를 낸 일도 있었다. 여권을 이삿짐 속에 넣고 부쳐버린 것. 이미 컨테이너에 들어가 부산의 물류 창고로 옮겨진 이사 박스 200개 가운데 몇 개를 일일이 풀어본 끝에 핸드백 속에 든 여권을 발견했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