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윈스턴의 '오퍼스3'는 6개의 숫자창으로 시,분,날짜를 보여준다. 윗줄 양쪽 숫자 창은 시간. 아랫줄 양쪽 끝 숫자 창은 분, 가운데 줄의 위 아래 두 창은 날짜를 표시한다. 따라서 사진의 시계는 지금 '14일 20시 37분'이다. 초도 보여준다. 분이 바뀔때마다 56초부터는 윗줄 가운데 창에 숫자 '56, 57, 58, 59' 가 차례로 나타난다.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를 더 넣어 주세요!”시곗줄부터 시계판, 판을 둘러싼 케이스까지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박힌 고급보석(high jewelry) 시계. 세계적인 고가 시계 제조사들이 추구하는
호사의 ‘끝’은 어디일까.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바젤국제시계보석박람회’(4∼11일)와 제네바의 ‘국제명품시계전람회(SIHH·7∼14일)’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세계 고가 시계업체들의 끝없는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에벨의 '힙노틱'. 시계판이 아래위는 평평하고 양 옆은 볼록한 '토노(tonneau)' 형태인 벨루가 토노 모델의 신제품. 시계방향으로 배치한 3, 6, 9, 12 숫자판이 특징.
▼브라이틀링의 '벤틀리 모터스'. 파일럿을 위한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만들어온 브라이틀링이 영국 벤틀리 자동차와 제휴했다. 8분의 1초까지 측정 가능.
▼피아제의 '플라워' 과거 모델은 팔찌형 브레이슬렛에 물방울 모양커팅의 다이아몬드로 꽃모양을 만들었지만 이번 제품은 실크 시곗줄에 핑크와 블루 사파이어를 사용했다.
93년의 역사를 가진 에벨(Ebel)사는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 46개, 원형 다이아몬드 99개가
교차하는 케이스와 138개의 작은 다이아몬드들이 시계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박힌 ‘미드나이트’ 컬렉션을 선보였다. 시계 하나를 만드는 데 쓰인 다이아몬드는 총 4.90캐럿.
지난해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로 치장된 ‘프리미어 컬렉션 크로노그래프’를 출시한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사는 올해 케이스가 부드러운 곡선이고 잠금장치가 따로 없이 손목에 밀착하는 금과 백금의 팔찌형 브레이슬렛에 총 4.45캐럿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애버뉴 C’를 내놓았다.
▼'커다란 시계판'의 유행을 잇는 다미아니의 '이고 오버사이즈'컬렉션. 핑크골드 시계케이스에 시가 질감의 악어가 죽줄을 달았다. 시계 보관상자에는 습도조절장치가 있다.
▼에르메스의 '글리사드'. 에르메스의 간판상품인 켈리백의 자물쇠를 연상시키는 덮개가 왼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시계판을 드러낸다. 글리사드(glissade)는 프랑스어로 '미끄러지다'는 뜻.
▼로크만의 '누오브-카본파이버'. 시계 케이스를 금이나 철이 아닌 특수 가공한 탄소섬유로 처리했다. 젊은 세대를 겨냥해 부담스럽지 않고 스포티한 디자인이 눈에 띈다.
▼휴블롯의 아트 컬렉션 중 하나인 '라쿠조(樂鳥)'. 옻칠을 한 다이얼에 새를 새겨넣은 뒤 다시 옻칠을 하고 금가루와 은가루를 뿌렸다. 일본의 칠공예를 응용했다.
이 같은 다이아몬드와 시계의 강렬한 조합은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이라는 지난해의 트렌드가 올해도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해리 윈스턴이 2001년부터 내놓기 시작한 ‘오퍼스(Opus)’ 시리즈의 새 모델은 또 다른 방식으로 시계 디자인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프랑스 시계제조업자 비아니 알터(40)가 1년반에
걸쳐 디자인하고 제작한 ‘오퍼스 3’는 핑크 골드 혹은 백금 케이스에 6개의 숫자 창이 곤충의 눈처럼 뭉툭하게 튀어나와 있다. 시침, 분침 없이 고가 시계업체들이 꺼리는 숫자표시 방식으로 시간과 날짜를 나타낸 것.
‘오퍼스 3’를 처음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시간을 어떻게 읽는 거지?”라고 물었고 알터씨와 마케팅 담당 사장인 막시밀리앙 뷔세는 그때마다 자랑스럽게 웃으며 설명했다.
(시간 보는 법은 사진설명 참조.)
“‘해리 윈스턴’이라는 이름이 붙은 시계라면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슬로건 아래 ‘오퍼스’ 시리즈 제작이 시작됐지만 이번 모델의 경우는 일부 임원들이 제작 자체를 강하게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설명 없이는 시간을 볼 수 없고 ‘시계인가, 아니면 아주 비싼 장난감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드는 ‘오퍼스 3’는 55개만 한정 생산된다. 이 중 1개가 올 여름 국내에 수입될 예정. 예상 가격은 4000만원선이다.
보석으로 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트렌드 가운데도 정밀시계공업 수준의 꾸준한 향상을 이룬 업체들이 눈에 띄었다. 항공기 조종사용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만들어온 브라이틀링(Breitling)은 명차 롤스로이스를 만들었던 벤틀리사와 제휴해 새 제품 ‘벤틀리 모터스’를 선보였다. 브라이틀링의 판매담당 부사장인 마리안 앙리옷은 “최고 경지의 기술과 비행에 대한 남성들의 꿈을 고스란히 담았다”고 말했다.
박람회장은 역사가 길지 않은 업체들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1980년에 창립된 휴블롯(Hublot)사는 ‘23년이 지나도 새것처럼 보이는’ 특유의 고무 스트랩 컬렉션의 하나로 우주선 선체에 쓰이는 물질인 탄탈륨으로 된 ‘프리미어’를 내놓았다. 1986년 시계제작을 시작한 이탈리아 로크만(Locman)
사의 마르코 만토바니 사장은 “마음이 젊고 개방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시계를 만들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로크만사는 탄소섬유로 케이스를 만든 신제품을 선보였다.
바젤·제네바=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