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을 인터뷰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김정은이 심각한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다. 열이면 열 모두 “웃길 것 같다”고 대답했다.
4월30일 개봉될 ‘나비’에서 김정은이 맡은 은지는 서울 간 애인 민재(김민종)를 찾아 상경했다가 요정에 팔려가고 군인의 애첩이 되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다.
시사회에서 김정은은 “코미디 연기만 계속 해왔는데 이런 비극적 멜로도 해볼수 있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기대하지 않는 역할을 ‘죽어도 좋을만큼’ 해보고 싶었다는 것일까?
영화 ‘나비’에서 코미디 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을 연기한 김정은. 사진제공 태원엔터테인먼트
‘코미디 배우로는 모자라 멜로의 예쁜 주인공을 해보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이 영화는 예쁜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예쁘기로 치면 ‘가문의 영광’이 훨씬 낫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단한 연기 변신을 해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모든 역할을 다 잘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이지만, 그래도 평생 한 번 해볼까 말까한 비극이라는 점에 마음이 끌렸어요. 배우 생활을 계속 해도 내가 그런 캐릭터를 연기할 일은 다시 없을 것 같고.”
그래도 한 번 익숙해진 스타의 이미지는 여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나비’에서도 김정은이 중반 이후 비극적인 사랑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보다 천진난만한 시골 처녀를 연기하는 초반부의 이미지가 더 친숙하다. 그의 히트작인 ‘가문의 영광’에서 관객들이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중 하나는 피아노를 치며 ‘나 항상 그대를’을 부르는 대목. 말 못하는 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했지만 보는 이에게는 희극적이었다.
‘나비’에서도 김정은이 떨어진 가방끈을 붙들고 눈물을 철철 흘리는데 보는 이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 연기할 때 정말 슬픔을 갖고 해요. 남 웃길 생각하면서 연기하면 눈물이 나겠어요. 그리고 배우가 웃길 준비를 하고 ‘너네 한 번 죽어봐’하고 달려들어 웃길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나는 정말 슬픈데 상황 자체가 코믹하니까 전체적으로 코미디가 되거나, 주인공은 비극을 연기하는데 관객들은 희극적 재미를 느끼는 상황이 좋아요.”
그는 보는 사람과 ‘주파수’가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로 연기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연기가 재미있고 즐거울 것 같아서 했는데 막상 관객들이 재미있어 해주면 ‘주파수’가 맞았다는 행복감이 든다”는 것.
올해 스물 여덟.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삶” “좋아하는 한 가지를 위해 싫어하는 10∼15개를 해야 한다면 하겠다”는 등의 고집으로 신인 생활을 견뎠다.
이젠 남부러울 게 없을만큼 유명해졌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이 줄어드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지금 제대로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