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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화계 뉴스]"알 파치노의 삭힌 분노를 보라"

입력 | 2003-04-24 17:51:00

알 파치노가 최근작 ‘피플 아이 노’에서 주인공 ‘엘리’의 지친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왼쪽은 ‘빅토리아’역의 킴 베이싱어. 사진제공 Internet Movie Database



‘가슴 속에 분노를 묻어둔 중년 남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

미국 뉴욕타임스는 20일자에서 중견배우 알 파치노(63)가 주연한 영화 ‘피플 아이 노(People I Know)’의 25일 현지 개봉을 앞두고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 영화에서 알 파치노는 ‘잘나가던 시절’을 뒤로한 채 과로(過勞)에 시달리는 기업체의 홍보 담당자 엘리로 출연한다.

알 파치노가 이런 역할을 맡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알파치노는 ‘사랑의 파도’(89년) 이후 ‘여인의 향기’(92년) 등 여러 영화에서 ‘피플 아이 노’의 엘리같은 일관된 캐릭터를 표현해왔다.

그 일관된 캐릭터는 ‘큰 좌절을 겪은 뒤 삶에 지친 중년 남성’이다. ‘여인의 향기’의 프랭크, ‘프랭키와 조니’(91년)의 조니, ‘인섬니아’(2002년)의 윌 등 그동안 알 파치노가 맡은 배역은 겉으로는 다양해 보이나 속내는 마치 같은 공연에서 전개되는 여러 에피소드처럼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엘리 등은 대부분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해 실패를 맛봐야 했고 현재의 자기 모습을 부정하려 한다. 이처럼 이 중년 남성들은 삶에 지쳐 있다.

그러나 알 파치노의 진정한 매력은 표면상의 피로(Fatigue) 밑으로 강렬한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알 파치노가 보여주는 ‘지치지 않는, 힘이 넘치는’ 피로로 내면에서 들끓는 분노처럼 관객들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대부 1’(72년)의 마이클에서도 이런 점은 잘 드러난다. 마이클은 차갑고 지적인 눈매로 다른 인물들을 주시하는 모습 너머로 억눌린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 사상 손꼽히는 ‘진정한 비극성을 가진 위대한 캐릭터’는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이 덕분에 알 파치노가 맡은 캐릭터들은 강렬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인의 향기’ 등 로맨틱 요소가 있는 영화들은 그 강렬함 때문에 작품의 균형이 흔들리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이 노령(老齡)의 배우가 여전히 관객의 관심을 끄는 이유에 대해 “속으로는 아직 뜨거운 열정을 가진 채 좌절해야 하는 중년 남성의 말로가 어떤지 그를 통해 확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