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이 추구하는 10대 국정과제 중 첫 번째는 평화와 번영을 구축할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이다. 북핵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남북정상회담을 마련해 최종적으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정책 목표다. 그러나 정권 출범 두 달째를 맞이하는 현시점에서, 과연 이러한 목표가 성사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들이 적지 않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 특별법, 이라크 파병결의, 북핵 해결을 위한 3자회담, 그리고 유엔 인권위에서 제기된 북한 인권에 대한 결의안 채택 불참이 대북정책 관련 정책으로 가장 두드러진 사안들이다. 이라크 파병이 국론을 양분하는 진통을 겪으면서도 채택된 까닭은 북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략적 고려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배제되더라도 북한을 회담에 끌어내야 한다는 고육책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유엔 인권위의 대북 결의에 불참했다는 사실은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북한 눈치보기’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지 않을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은 가뜩이나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다. 또한 유엔 인권위 결의가 당장 북한의 인권을 개선할 수 없다는 점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다 아는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한국이 애써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그 책임과 의무를 위반한 꼴이 되었다.
북한 문제는 민족문제이면서 동시에 안보문제다. 북한정권은 대화 상대이면서도 유사시 야기될 수 있는 비극에 대비해야 하는 상대이기에 더욱 정책 선택에 어려움이 있다. 북한은 한국을 3자회담에서 배제시키면서도 식량문제에서는 원조를 요청했고, 한국은 즉각 이를 수락했다. 그러면서도 당국은 인권문제는 북핵 위기가 해소되면 고려하겠다고 자세를 낮추고 있다. 북핵 위기가 해소될 즈음이면 국정과제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야 할 터인데 과연 그 시점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지 심히 의문스럽다.
남북정상회담은 상대가 응해야 가능한 사안이다. 만약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를 전제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국정과제는 그대로 진행될 수 없다. 지난 정권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해 현재 대북송금 문제를 특별검사제로 밝혀야 할 만큼 북한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권이 어떻게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것이고, 과연 그때 북한이 듣기 거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대외정책 결정에는 명분과 실리가 있고 그 과정에는 당근과 채찍이 공존해야 한다. 상대가 듣기 좋은 소리만 나열할 수는 없다. 식량문제에서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북한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단호한 우리의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민족공조도 사리에 맞아야만 남남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는 정부만이 떠맡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도 북한 인권문제를 더 이상 유보시키지 말고 여야가 합의해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 한국 외교에도 분명한 상호주의 잣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 외교가 대등한 한미관계, 당당한 대북정책을 전개할 수 있다.
김형국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