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13일부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감시체계를 가동한 지 한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방역과 검역시스템이 허술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격리병상에 있어야 할 의심환자가 일반병상에 수용되고 자택격리도 엄격하게 이행되지 않고 있다. 또 최근 중국 베이징(北京) 등에서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하고 있지만 공항과 항만에서 체온검사 등의 검역활동도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사스 의료진 일부가 소속된 보건의료노조는 24일 공개적으로 정부의 사스대응 준비 부족을 비난하기도 했다.
▽허술한 방역=정부는 전국 13개 병원을 사스 격리병원으로 지정했지만 최근 신고건수가 급증하면서 격리병상이 부족해졌다. 방역당국은 “격리병원의 수용능력이 부족해 의심환자 중 결핵균이 검출된 환자를 일반병상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국립보건원의 방역지침은 의심환자와 추정환자를 같은 집단격리실에 두지 말도록 했다. 또 격리실은 내부 공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음압(陰壓)시설을 갖추거나 화장실이 있는 1인실, 공기가 다른 병실과 통하지 않는 다인실 순으로 마련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격리병원인 경기 S병원이 최근 사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일반병동의 3인용 병실에서 치료했다. 이 병실은 음압설비와 공기차단장치(에어커튼)가 없는 것은 물론 의료진이 보호 장비를 갈아입을 공간도 없다는 것.
더구나 이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는 중합효소면역반응(PCR) 검사 결과 코로나바이러스 양성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또 경기도가 별도로 지정한 O병원의 경우 따로 격리병상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가 유사 환자가 들어오자 비어있던 병동에 수용한 뒤 더 이상 증상을 보이지 않자 퇴원시켰다는 것.
방역당국은 퇴원한 환자의 경우 일주일간 자택격리하고, 위험지역에서 입국한 사람 전원에 대해서는 입국 후 5일과 10일째 전화 추적조사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자택격리는 관할 보건소 직원이 전화로 문의하는 데 그쳐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지적됐다.
위험지역 입국자에 대한 전화 추적조사의 경우도 모두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입국 10일이 지나면 자동 종료하는 형편이다.
방역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원의 인력 부족도 문제. 보건원의 방역과 인력은 12명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사스 전담팀 300여명의 4%에 불과하다. 더구나 방역과 인력은 사스뿐만 아니라 에이즈 결핵 생물테러 예방접종 등의 업무까지 맡고 있는 실정이다.
▽낮은 검역 차단벽=사스 위험지역에서 입국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4000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베이징 대학들의 휴교조치로 유학생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사스 차단의 ‘1차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의 검역직원은 51명에 불과해 베이징과 광둥(廣東)성 입국자만 체온검사를 하고 있다. 24일 저녁부터 군의관 등 군 인력 36명이 인천공항에 투입됐지만 체온검사 대상자를 중국 전체 입국자로 늘리는 데 그쳤을 뿐이다. 정부는 23일 차관회의에서 위험지역 입국자 전원에 대해 체온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일부 유학생은 체온검사에서 걸리지 않기 위해 해열제를 복용하거나 검역설문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항만 등을 통해 들어오는 입국자들을 점검하는 검역인력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인천공항검역소 관계자는 “검역을 통해 사스 감염자를 모두 가려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스 방역과 검역의 핵심은 초기 증상이 발생했을 때 방역당국에 신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