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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만나는 시]하종오 ‘무언가 찾아올 적엔’

입력 | 2003-04-25 17:40:00


원래 남의 밭에 있던 것을 슬쩍 해와서

화단에 심어놓은 뒤로 내 속셈 모르는 척

적작약이 다신 꽃을 피우지 않았답니다.

제까짓 놈 제까짓 놈 언제까지 영 꽃 안 피우는지

두고보자 벼른 지 몇 해 되는 사이에 그만

나는 눈길을 거두었고, 되는 일이 없었답니다.

날 사로잡아봐야 흰 꽃송이나 도둑당하지 싶어서

에잇 고얀 사람 에잇 고얀 사람 지 맘대로 하라는 건지

적작약이 잎사귀만 내어 보이고 일찌감치 시들었답니다.

서로 본체만체하는 동안에 비로소 알았을까요.

오래 내 눈빛을 받아야 저도 꽃망울을 맺고

제 꽃봉오릴 오래 보여주면 나도 잘된다는 걸.

올해는 희디흰 꽃송이를 송이송이 벙글었답니다.

아니, 아니, 한해 더 넘기면 꽃을 피워서는 안될 일이

적작약에게 있었을 겁니다.

-‘해거리’

우리가 뜰이나 화단, 베란다 안에 심어놓은 모든 식물은 근본적으로 ‘남의 밭’에서 가져온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고 가져왔느냐(합법), 아니면 이 시에서처럼 ‘슬쩍’한 것이냐(불법)의 차이가 있지만, 그 같은 기준은 전적으로 인간의 입장일 따름이다. 식물의 처지에서 보면 모두 강제이주 당한 것이다.

하종오 시인이 최근 펴낸 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창작과비평사)은 단절과 연속에 관한 성찰이다.

단절은 자연과 인간, 아버지와 아들, 태어남과 죽음, 도시와 시골, 일과 ‘나’ 등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이 거대한 단절은 곧 문명사적 단절이거니와 시의 화자가 도시인일 때, 회사원일 때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퇴출당하고, 도시에서 추방당하고 나서야 ‘나’는 단절의 전모와 마주친 것이다. 이때의 단절은 극심한 불화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나’와 적작약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그 관계는 이내 역전된다. 대등해진 인간과 식물은 마침내 상생의 지혜를 터득한다. 시 ‘해거리’는 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이 도달하고 있는 한 절정이다. 자본주의 거대도시에서 찌든 ‘사지삭신을 흙에 부리고’나서야 자연과 분리되어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자기의 본래 모습과 만난 것이다.

‘무언가 찾아올 적엔’은 하종오 시인의 귀농 일기이다. 하지만 귀농은 낙향이 아니다. 도피가 아니다. 귀농은 자발적 망명이다. 미래로 먼저 가 있는 것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