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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권순활/경제계 원로들의 '쓴소리'

입력 | 2003-04-27 18:16:00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이달 25일자 동아일보 경제섹션 3면에 실린 ‘우리 다이아몬드 클럽’ 창립식 모습이었다. 이 모임에는 82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했다.

이 사진이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참석자들의 표정이 유난히 진지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메모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뒤쪽에 앉은 사람도 경청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저런 회의에 마지못해 참석한 사람들의 심드렁한 모습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보 사진기자가 24일 이 장면을 취재했을 때는 초청연사인 이헌재(李憲宰)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했기에 기업인들의 눈과 귀가 쏠린 것일까.

이 전 장관은 이날 출범 두 달을 맞은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새 정부의 노선상 문제점이 시장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최근 철도노조 파업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친(親)노동계 성향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 정부 ‘노선’에 대한 경제계 원로의 ‘쓴소리’를 좀 더 들어보자.

재무부장관 경제부총리 국무총리 등을 지내면서 특히 경제분야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남덕우(南悳祐) 전 총리는 지난달 이런 호소를 했다.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가 분명해야 하며 국가이념이 없는 국민적 통합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약자(弱者)와 빈곤층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지면 자유를 보장할 수 없지만, 반대로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강자(强者)와 부유층의 자유와 활동을 억압하면 발전이 없어지고 기업가정신을 꺾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 핵심인사들은 경제계 원로들의 걱정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개혁 흠집내기’로 치부하면서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려도 될까.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속에 노 대통령 등 정권 실세들이 ‘한국의 미래’를 위해 정말 귀기울여야 할 부분은 없을까.

필자는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이던 2월 10일자 ‘포퓰리즘의 그늘’이란 칼럼에서 우리 사회 갈등의 핵심이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지역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념일지 모른다고 전망한 바 있다.

2개월 반이 흘렀다. 현실을 읽기 시작한 약간의 궤도수정 조짐이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정책의 큰 줄기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침체는 가속화하고 결국은 국민부담 증가로 이어질 적자재정 편성을 통한 경기부양 논의까지 나온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경제정책은 동기가 좋다고 결과마저 그렇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재정 제약’과 생산성을 무시한 형평성의 지나친 강조는 거의 반드시 성장엔진 추락과 재정파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책 실패’의 최대 피해자는 지금 곳곳에서 볼 수 있듯 역설적으로 서민층이다.

권순활기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