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보위원회가 고영구 국정원장에 대한 부적절 의견을 제시한 것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월권과 모욕을 언급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에게 “국정원장 후보로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까지 말한 것은 인사치레라고 하더라도 그간의 상생정치 다짐과는 너무 상반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올 들어서만 ‘국회 중심 국정운영’ ‘국회 존중, 의원 존중’을 몇 차례나 공언했던가. 정치에 갓 입문한 노 대통령을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게 한 1988년 5공청문회 때 증인이나 참고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행은 또 얼마나 격했던가.
다른 것은 차치하고 국정원장 문제만 봐도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국회가 법에 따라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검증 결과에 따라 의견을 낸 것이 ‘월권과 모욕’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국회 의견을 무시하고 더구나 일부 의원들의 전력까지 비난하면서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이 오기와 독선인가. 권력기관장 청문회의 근본취지가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답은 분명해진다.
이번에 나타난 논란과 시비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국회 의견이 더 강한 정치적 구속력을 갖도록 청문회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국회 의견 존중 의무를 명기한 선언적 규정을 신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영구 파문’이 당혹스럽고 유감스럽더라도 야당이 원내 다수당으로서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의 더 큰 지지를 받을 것이다. 정치논리로 풀어야 할 정치문제를 국가의 안위와 이해가 걸린 국정과 연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 대표가 원내투쟁과 추경예산안 처리를 연계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가 불가 의견을 밝힌 서동만 상지대 교수만은 국정원 기조실장 인선에서 즉각 배제함으로써 국회와 야당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