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 국민은 남북한 양쪽 정부를 모두 믿지 못했다. 북한은 호전적 성격과 유화적 제스처를 번갈아 보여주는 바람에 남쪽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한 손으로 식량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간첩 잠수정을 내려 보냄으로써 어떤 유엔주재 대사로부터 “먹이를 주는 손을 물어뜯는 격”이라는 흉한 말을 듣기도 했다.
남쪽 정부 역시 북한의 존재를 독재정권 유지에 악용하는 바람에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그들이 도발할 때마다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면서 늘 ‘좌시’해 왔고, 퍼주기가 아니라면서 ‘북한이 계속 판돈을 키우는 노름판’(한승주 주미대사)에 뒷돈을 대줘 온 것도 역대 정부가 불신을 자초한 원인들이다.
▼핵있으니 ‘평화비용’ 더 내야하나 ▼
그렇게 건네진 돈이 직접 핵개발에 들어간 게 아니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말에는 기가 막힌다. 북한은 인구 전체의 굶주림을 한꺼번에 해결하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돈의 몇 배를 들여 핵을 개발했고 그로 인해 부족해진 수억달러의 돈과 식량을 우리가 보충해 주었는데 그게 군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교활한 셈법이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내가 낸 세금 중 일부는 북한이 핵폭탄 만드는 데 최소한 뇌관 값에라도 보태졌을 가능성이 크다.
못사는 동포를 가엽게 여겨 돕는 것과 핵전쟁을 막기 위해 ‘한반도 평화비용’으로 돈과 식량을 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후자의 경우는 힘에 굴복해 빼앗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포동미사일을 가졌을 때는 몇 억달러면 됐지만 이제 핵무기까지 갖고 있다니 ‘평화비용’의 단위가 얼마나 올라갈지 걱정이다.
개인마다 생계수단이 다르듯 국가마다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다. 어느 나라는 첨단기술로 먹고살며, 어느 나라는 금융으로, 또 어느 나라는 관광으로 살림을 꾸려간다. 그러나 북한이 선택한 길은 고약하게도 핵폭탄이나 만들어 ‘조폭’처럼 국제사회를 협박하며 사는 것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그런 존재들의 말로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지만, 북한이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할지도 모르는 재앙 때문에 국민은 불안한 것이다.
저들이 핵무기를 가졌다는데도 반전을 외치던 사람들은 말이 없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우리 사회 친북 인사들도 핵을 비판하기는커녕 언급 자체가 없다. 설마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핵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스스로 체제를 지킬 능력이 생겼다’거나 아니면 ‘통일이 되면 우리도 드디어 세계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이 된다’고 환영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여하튼 무반응이다.
80, 90년대 “한반도에서 핵을 몰아내야 한다”고 끈질기게 투쟁해 마침내 주한미군의 전술핵 제거에 성공했던 모모 인사들 역시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만일 남쪽 정부가 핵을 갖겠다고 했다면 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모르면 몰라도 ‘동북아 평화를 깨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전쟁광적 발상’이라며 벌떼처럼 달려들었을 게 틀림없다.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반대할 만큼 핵에 예민했던 사람들도 막상 핵폭탄이 등장하니까 사라져 버렸다.
우리 정부와 반전시위를 이끌던 사람들은 그동안 대다수 국민이 북한 핵개발에 엄중하게 대응하라고 요구할 때 ‘냉전적 사고’라고 면박을 주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미국과 러시아간 냉전은 끝났어도 군사분계선 양쪽에 100만명의 군대가 서로를 향해 수천문의 포를 겨냥하고 수백기의 미사일을 조준하고 있는 한반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지구상에서 냉전이 종식됐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이 냉전이 아니라면 냉전의 정의는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
▼이런 판에 나라안은 ‘갈등전쟁’중 ▼
북한의 핵보유 발언으로 세상이 시끄러운데 나라 안은 온통 내부적 갈등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은 안보를 위해, 밖을 향해 전쟁을 치렀지만 이 나라는 지금 안을 향한 전쟁이 한창이다. 언론(오보)과의 전쟁, 국회(야당)와의 전쟁, 이른바 ‘개혁주도세력’들의 ‘개혁저항세력’에 대한 전쟁 등은 북한 핵과 함께 우리 시대를 더욱 살벌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그런 전쟁의 용맹성을 북한이 핵을 제거토록 하는 데 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규민 논설위원실장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