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경련 기업윤리학교’에서 기업 윤리 담당자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이들은 “윤리경영이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필수 요소가 되었다”며 한국에서의 윤리경영 발전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사진제공 전경련
“우리 회사는 2001년 윤리경영을 도입했는데 세부적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다른 회사의 사례를 배우러 왔습니다.”(쌍용화재 유형모 준법감시팀장)
“회사가 당면한 총체적 위기를 윤리경영으로 돌파할 수 있을지 모색하고 싶습니다.”(S기업 관계자)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3층 2회의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79명의 기업 윤리담당자들이 모인 강의실에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8, 29일 개최한 ‘기업윤리학교’는 정원이 60명이었으나 기업들의 요청이 빗발쳐 79명이 정식 수강생으로 등록, 이틀간의 교육을 마쳤다.
주요 교육 내용은 국내외 윤리경영 동향과 신세계 국민은행 삼성화재 등의 윤리경영 사례. 최근 1∼2년 사이에 윤리강령과 행동규범 등 윤리경영시스템을 도입한 기업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지식을 얻으려고 참석한 실무자들이 많았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SK증권 현대자동차 동부제강 삼성에버랜드 롯데쇼핑 등 참석한 기업들의 업종도 금융기관 제조업체 유통서비스업체 등으로 다양해 국내 기업 전 분야에 윤리경영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달 초 부패방지위원회 청렴도 조사에서 청렴도가 낮은 것으로 발표된 한국전력은 자회사를 포함해 9명이나 수강한 것도 눈에 띄었다.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은 숲 가꾸기 운동 등의 사례를 발표한 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면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윤리 실천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세계의 윤리경영 사례를 발표한 명노현 과장은 “윤리규정을 너무 세밀하게 만들면 임직원들이 지나치게 간섭받는다고 느낀다”면서 “핵심적인 사항만 문서화한 뒤 시행해 나가면서 질의응답(Q&A)을 통해 불문율을 확립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수강자들의 관심과 질문은 넓고도 날카로웠다.
“실무적인 윤리경영체계를 잘 갖춘 기업은 많습니다. 그러나 엔론이나 SK처럼 대형비리는 최고경영진에서 나타납니다. 그걸 막을 방법부터 강구해야 하지 않나요?”
“윤리경영을 한다면서 협력업체 직원들이 매장에 나와 판촉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임직원들의 근무시간이 긴데 어떻게 사회봉사활동까지 권장할 수 있나요?”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윤리경영시스템 자체에 대한 회의와 자성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경영기획실 이중희(李重熙) 부장은 “기업윤리를 실천하는 데 가장 어려운 분야가 정치권 및 공무원 관계”라고 일침을 놓으면서 “사회 전반의 도덕성이 함께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연구원(KIET)의 심영섭(沈永燮) 선임연구위원은 “윤리경영에도 필수가 있고 선택이 있다”면서 “기업들이 투명성과 공정거래 등 기본을 하지 않고 기부 등으로 이미지만 덧칠하는 등 또 다른 기업 ‘분식(粉飾)’으로 흐를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사회 기부 전문 단체인 ‘아름다운 재단’의 임진희씨는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을 기획하기 위해 이 강의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한국 기업들이 윤리경영이나 사회봉사에 관심이 많고 이미 많은 기업들에서 활발하게 참여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