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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불가능은 없다…우주탐험등 실제처럼 생생하게

입력 | 2003-04-29 17:41:00

곡면 스크린을 보면서 컴퓨터를 조작해 우주정거장 내의 생활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상 우주정거장’이 28일 국내에서 공개됐다. -사진제공 한국실리콘그래픽스


경기 화성시 남양 현대자동차 디자인연구소 가상현실센터. 3면이 스크린인 영상품평장에 입체안경을 끼고 들어서자 실물 크기의 자동차가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공중에 떠 있다. 디자이너들은 이 디지털 자동차를 빙빙 돌려가면서 감상한다. 또 배경을 바꿔 도심과 들판에서 드라이브해 보면서 차의 외형을 다듬는다.

현대자동차는 80년대까지는 찰흙을 빚어 차를 디자인했고 90년대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설계를 했다. 2000년부터 모든 자동차는 바로 이곳에서 가상현실로 먼저 태어난다. 정몽구 회장은 투스카니 이래 모든 차를 이 가상현실센터에서 보고 제작 결정을 내렸다.

이 센터는 차의 외관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시뮬레이션 한다. 디지털 디자인팀 김태병 과장은 “특히 가상현실 인테리어를 체험하면 실제 차에 탄 것 같은 느낌을 줘 디자이너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전세계에는 가상현실센터가 650곳이 있다. 94년 영국 리딩에 처음 등장한 가상현실센터는 2000년 400개를 넘으면서 급속도로 늘고 있다. 가상현실 환경에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복잡한 문제를 놓고 협업을 통해 정확하고 빠르게 공동의 의사결정을 내린다.

이 시스템의 거의 대부분을 공급한 미국 실리콘그래픽스사가 28일 연세대 공학관에서 ‘가상 지구’와 ‘가상 국제우주정거장’ 등 최신작을 선보였다.

가상 지구는 상업용 관측위성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지구를 만든 것. 곡면 스크린 위의 주먹만 한 지구에 점을 찍고 화면을 확대해 나가자 건물은 물론 자동차까지 선명히 나타난다. 미군 지휘통제센터는 이보다 훨씬 선명한 첩보위성 사진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를 손바닥 보듯 감시한다.

유럽우주기구(ESA)가 실제 설계도를 갖고 만든 ‘가상 국제우주정거장’은 지상에서 우주인을 훈련시키기 위해 만든 것. 이 작품은 올해 말 베이징 천체관에도 설치돼 중국인들이 지상에서 우주정거장 생활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호주 정부는 지하철에서 화재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가상현실센터를 만들어 매년 5000명씩 직원을 훈련시킨다. 또 멜버른시는 재개발 뒤 도시가 어떻게 바뀌는지 시민이 느낄 수 있게 한 가상현실을 개발 중이다. 뉴욕 헤이든 천체관에 들어선 가상우주탐험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1년 만에 투자비를 뽑았다.

이 밖에 가상 수술, 문화재 복원, 석유 탐사, 단백질 구조 연구, 핵폭발 실험, 관광, 스포츠, 비행사 훈련, 학교 교육 등 모든 분야로 가상현실이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과학기술연구원과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2000년 이후 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해양연구원, 이화여대, 포항공대, 한양대 의대가 가상현실센터를 구축했다.

과학기술연구원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 경주의 옛 모습을 체험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현실극장을 만들었다. 과학기술정보연구원에서는 과학자들이 복잡한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가상현실센터에서 연구 중이다. 해양연구원은 해저지층탐사자료를 가상현실로 분석해 석유가 나올 만한 곳을 찾고 있다.

과학기술연구원 영상미디어센터 고희동 박사는 “3, 4년 뒤에는 초고속망을 이용한 가상현실 원격회의도 등장해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 실제 회의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상현실은 주입식 교육을 체험식 교육으로 바꿀 수 있어 몇 년 뒤에는 학교교육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