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팅은 칩이 쌓일수록 점점 늘리고, 칩이 내려가면 따라 줄이는 거다.’
비록 당시엔 그 뜻을 몰랐어도 10년 전 내가 동생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이었다. 나중에 보니 위험관리의 대가(大家) 얼 키퍼에게도 그건 부동의 철칙이었다. 훗날 나도 ‘성공투자원칙’이란 걸 정리하게 됐는데 결국은 그게 전부였다. 사실 그래서 난 그 귀한 원리를 젊은 나이에 깨친 동생을 참 대단하게 여겨 왔었다. 그런 동생이 문득 15달러에서 25달러로 베팅을 키우다니….
돈도 못 따고 여전히 본전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차피 도박인데 겨우 10달러 더 지르는 게 뭐 그리 대수냐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동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타고난 프로, 난 고생 끝에 만들어진 늦깎이 프로. 신구(新舊)를 가릴 것 없이 프로가 프로인 것은 원칙이 있고 그걸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명인 바로 그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데 어찌 심각한 일이 아닌가.
‘15달러 미니멈 베팅만 해도 큰 데 도대체 웬일이지?’ 나는 흘깃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심사가 편치 않아 보였다. 귀국 후 본사냐 현장이냐, 기획이냐 영업이냐, 아마 그런 고민이었으리라. 그럴 땐 쉬어야 함을 그가 왜 모르겠느냐만은 사람은 실수가 있는 법, 이미 때는 늦어 보였다. 한번 흐트러진 마음을 끝내 추스르지 못한 동생은 결국 거기서 아웃이 되고 말았다. 내가 곁에서 굳이 말리지 않았던 건 그 옛날 나를 가르쳤던 이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였다.
스승은 갔고, 이제 그 제자가 고군분투해야 할 장면. 난 문득 3, 4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업계 동료 열댓 명이 세미나 참석차 홍콩에 갔을 때다. 귀국 전날, 귀한 달러 벌어서 애국하자며 우리 일행은 밤늦게 마카오로 원정을 갔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저마다 보무당당 각개전투를 벌였는데….
겨우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전멸을 했다. 나마저 올인되면 전부 헤엄을 쳐서 홍콩까지 가야 할 판이었다. 등 뒤론 우글우글 온통 먼저 가신 영령들. 하지만 난 그 초조한 시선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을 원칙대로만 싸웠다. 그리곤 이튿날 새벽, 우린 모두 헤엄 대신 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때도 잘 해냈으니 이번에도….’
동생도 가고 시간도 자꾸 가고, 사뭇 다급해질 수도 있는 형국임에도 난 최대한 냉정을 유지했다. ‘원칙은 결국 승리하고, 자제는 반드시 보답받는다.’ 지난날 그 숱한 좌절과 상심 뒤에 얻은 교훈이 이것 아니었던가. ‘어떤 일이 있어도 교과서대로만….’ 얼마를 그렇게 버텼을까. 마침내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를 지었다.
김지민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cic2010@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