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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분필 대신 붓으로 칠판에 그린 추억… 김명희展

입력 | 2003-04-29 18:13:00

'내가 결석한 소풍날 02' 2002, 539 x 120㎝.



화가 김명희(54)씨는 칠판에 그림을 그린다. 그가 칠판화를 시도한 것은 1990년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 소양강댐 인근 폐교에 입주하면서부터. 17년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이자 화우(畵友)인 김차섭과 함께 이곳으로 왔다. 두 사람은 교실 네 칸의 분교를 사들여 각자의 작업실로 만들었다. 김씨는 어린이들이 떠난 이 폐교의 칠판에서 환영으로 남아 있는 어린이들을 발견했다. 이는 떠돌이나 다름없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묘하게 겹쳤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던 김씨는 초,중학교를 외국에서 다녔고 초교 시절 한 학교에서 2년 이상 머물지 못했다. 이런 그에게 칠판에 낙서를 남기고 떠난 아이들은 상실의 아픔과 향수의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아직도 분필자국이 남아있는 칠판에 오일파스텔로 인물과 사물을 극사실 기법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얼음처럼 얼어붙었던 자신의 유년기가 폐교의 칠판을 만나면서 해빙기를 맞았다고 한다.

칠판화에는 1997년 그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며 뿌리뽑힌 채미지의 세계로 내던져진 한민족의 삶을 간접 체험했던 기억도 녹아있다. 북미, 한국, 시베리아, 영국을 돌며 만났던 유사한 모습의 봉분에서 부유와 이동이 인간에게 주어진 기본조건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들은 모두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로 이미지의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5월1일∼13일까지 갤러리현대. 02-734-6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