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그림이 밝아지고 힘이 있어진다는 평을 듣고 있는 화가 김종학씨의 근작 ‘설악산 풍경’(72.7x60.6㎝). 난마처럼 얽힌 꽃이며 풀인데도 하나하나가 개성을 가진 채 화면에 자리잡고 있다. 폭풍같고 회오리 바람과도 같은 감각적인 색채가 난무하는 그의 그림은 때로 희열과 때로 고통의 산물이다. 사진제공 예화랑
화가 김종학(69)이 사는 설악으로 가는 길은 천지사방이 봄이었지만 겨울이 섞여 있었다. 군데군데 녹지 않고 있는 눈을 보면서, 흐르고 변하더라도 저렇게 공존할 수 있는 자연이 부러운 한켠으로, 시간 앞에서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무력감에 기운이 빠졌다.
그때 거인처럼 불쑥 나타난 김화백. 큰 체구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그를 보자, 생기가 난다. 서울에서 4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그의 화실은 외설악 아래 설악동 들목에 있다. 땅 여기저기 깔려있는 꽃구경부터 시켜주었다.
“여기는 제비꽃, 저기는 할미꽃, 라일락…. 5월이면 붓꽃이 피고. 달맞이 꽃은 진짜 밤에만 피는데 한순간 핑그르르 돌면서 꽃망울이 확 열려. 근데, 꽃들도 피고 지는게 달라. 옛날엔 할미꽃이 참 많았는데 나무가 많아지니까 적어졌어. 식물도 싸움이 많아, 싸움이….”
그의 목소리가 잦아 든다. 어디 식물뿐이랴, 산다는 것 자체가 싸움 아니겠는가. 화가는 잠시 그런 생각에 젖는 듯 했다.
세계 무대를 종횡하는 큰 화가가 되기위해 마흔나이에 훌쩍 떠난 미국행. 외로움과 낯섬에 방황할 무렵 난데없이 서울서 날라온 이혼 통고는 그를 무너 뜨렸다.
2년만에 귀국했다. 쏟은 정에 등 돌리는 세태와 인정으로 상처받은 가슴을 쥐고 쫓기듯 내려온 곳이 이곳 설악이었다. 인생살이에서도 예술작업에서도 가장 깊은 실의에 빠져 있을 때였다.
'설악산 풍경' 50.3 x 45.5㎝
‘지고지순의 선(善)은 아름다움’이라 믿으며 살았던 탐미주의자인 그에게 삶은 언제나 자기 편이었다. 그런데도 그 때는 사는게 너무 힘들고 서러워 지친 맹수처럼 숲 속을 돌아다니다 몇 번이고 폭포속으로 뛰어들려고도 했었다. 그렇게 죽은 듯 살다가 순간, 설악의 산, 꽃, 새, 바람, 구름을 보았고 다시 붓을 들었다.
이전까지 미니멀 아트라는 추상의 세계에 몰입해 있던 그는 설악을 통해 구상화가로, 그리고 마침내 추상과 구상을 혼합한 ‘추상적 구상화가’로 다시 태어났다. 산, 꽃, 풀을 그리되 세부 풍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원근법도 무시한 2차원 평면에 골간(骨幹)을 간결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아래층 화실로 내려갔다. 화실 중앙 시멘트 바닥 위가 마치 팔레트같다. 화가는 물감을 바닥에 문지른 다음 캔버스에 칠한다. 옆에는 낡은 전축이 있다. 러시아 가수 빅토르 최의 음악이 흐른다. 얼마 전엔 비극적 생을 살다간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심취했었다. 화가는 고통과 비탄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에서 동질성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미적흥분 상태’가 되어야 그림이 된다고 말했다. 그릴만하다 싶지 않으면 아예 붓을 놓고 지내다, 그릴만 하다는 마음이 되면 질풍노도처럼 그린다. 때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사흘 밤낮을 꼬박 그릴 때도 있었다고 했다.
화실을 둘러보며, 어쩌면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설악이 아니라 자신의 격한 감정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채의 폭풍과도 같고 회오리 바람과도 같은 감각적인 색채의 난무(亂舞) 속에 스스로를 불사르고 있는 이 화가의 그림은 때론 희열, 때론 고통의 산물이다.
누군가, 그의 그림은 예쁘지 않고 아름답다 했다. 개성, 파괴, 부조리가 있으면서도 큰 조화가 있으니 완벽미의 예쁜 것과는 다르다고 말이다.
그는 슬픈 마음으로 설악을 만났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기쁘고 격정적인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그림이 훨씬 밝아지고 생명력이 넘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5월2∼22일 예화랑에서 열리는 전시에 나오는 작품들은 33점. 사계절 설악의 산과 들판이 빚어내는 빛과 풍경에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다. ‘김종학을 키운 8할은 우울과 광기’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다. 02-542-5543
속초=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