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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문홍/남한에 온 탈북자들

입력 | 2003-04-29 18:33:00


“남한에 온 뒤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쳐야 했다. 하나원(정부가 운영하는 탈북자 정착 지원 시설)에서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 문화 등에 대해 교육을 받으며 이 사회에 대해 내가 가졌던 꿈은 그야말로 허황된 신기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정부가 마련해 준 임대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엄청난 먼지뿐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텅 빈 집을 바라보니 외로움이 밀려 왔다. 세상에 나 혼자인 느낌….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2001년 3월 남한에 왔다는 탈북자 김모씨가 인터넷에 올린 수기 중 일부다. 혼자 내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 하지만 김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생필품 가격을 익히고, 거리에서 할머니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사소한 일에서 자신감을 키우며 차근차근 세상을 배워 나갔다. 김씨는 30대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의 수기는 다음 학기엔 영어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탈북자들이 모두 김씨처럼 현실을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못하다.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개중엔 산에 올라가 북녘 고향땅을 바라보며 자살을 기도하거나 알코올 중독이나 범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탈북문제 전문가인 윤여상 박사(한국정치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는 탈북자들이 흔히 보이는 특징으로 행동주의적 성향, 극단적 성향, 비정상적 기대 수준, 정서적 불안정성, 극도의 안전욕구 등을 꼽는다. 이런 탈북자들에게는 단 2개월간의 적응교육 후 사회로 ‘방출’하는 정부의 지원체계가 만족스러울 리 없다. 탈북자를 돕는 민간단체와 종교단체가 있다지만 이들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국내 거주 탈북자는 총 2886명. 지난해에만 1100여명이 새로 들어와 ‘연도별 1000명’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개인 단위의 작은 통일’이라고 할 탈북자들의 국내 적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미미해 보인다. 그런 가운데 미국 뉴욕 타임스는 최근 남한에 온 탈북 청소년들의 힘겨운 정착 과정을 집중 보도했다. 유엔 인권위에서 결의안이 채택된 북한 인권문제처럼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오히려 외국에서 더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아 낯 뜨겁다. 남한 생활에 대해 묻는 외국인 기자에게 “다른 행성에 온 외계인 같다”고 대답하는 탈북 청소년을 건강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책임이 아닌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